장생(掌牲 : 제사용 희생동물을 관리하는 직책)직을 맡고 있었다.
서기 2년(유리왕 21)에 왕의 명령에 따라 잃어버린 교시(郊豕 : 제천의식 때 희생으로 바치는 돼지)를 찾아나섰다가 국내위나암(國內尉那巖)이라는 곳에서 이를 붙잡았는데, 돌아와서 왕에게 국내위나암지역이 지세가 험준하여 외적방어에 적합한 곳일 뿐만 아니라 토지가 비옥하고 물산이 풍부한 곳임을 들어 천도를 건의하였다.
그 결과 고구려는 이듬해 국내위나암, 즉 국내성(國內城)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