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때 평양에 파송되어 있던 미국 장로교 선교사 킨슬러(Kinsler, F.)가 1929년에 불우한 환경으로 초등교육조차 못 받고 있는 청소년들을 모아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성서공부를 통하여 신앙생활로 그들을 유도할 목적으로 집회를 조직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명칭을 ‘성경구락부’로 한 것은 일제 아래에서 정규학교가 받는 심한 감독을 피하고, 매주 하루는 기도회를 열어 성경을 암송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자 한 이유에서였다.
6·25사변 후에는 생활의 궁핍으로 학교교육을 받을 수 없는 처지의 아동들과 전쟁고아들의 성장과 향학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큰 소임을 담당하였고, 부산·제주도를 비롯해서 여러 지방으로 확산되어, 1954년 겨울에는 전국 17개 지부에 학생수가 7만여 명에까지 다다랐다.
그러나 정부가 의무교육을 실시함에 따라 초등교육을 위주로 한 이 사업은 점차 중·고등교육영역으로 발전되었다. 한편 감리교 선교사 제퍼리(Jefferey, F.)는 1954년에 이와 비슷한 사업을 ‘웨슬리구락부’라는 명칭 아래 감리교회를 중심으로 시작하였는데, 교육장으로 교회당을 사용함으로써 학생들은 교육을 받는 동시에 교회와 적극적인 연관을 맺음으로써 선교에도 큰 성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 사업은 경제적인 발전과 사회 안정으로 정규교육의 기회가 확장됨에 따라 자연 소멸되고 성인교육프로그램으로 연결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