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광주시, 서쪽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 강남구, 과천시 · 의왕시, 남쪽은 용인시, 북쪽은 서울특별시 송파구, 하남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7°01′∼127°11′, 북위 37°19′∼37°23′에 위치한다. 면적은 141.72㎢이고, 인구는 97만 1424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3개 구, 48개 행정동(44개 법정동)이 있다. 시청은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에 있다.
광주산맥의 말단에 위치하며 200∼500m의 구릉성 산지가 서쪽과 동쪽에 남북으로 지난다. 시의 중앙부에 탄천이 남북으로 흐르고 있어 중앙에는 낮은 평야가 남북으로 길게 나타나고 있다.
동쪽에는 청량산(淸凉山, 479m) · 검단산(黔丹山, 535m) · 불곡산(佛谷山, 312m)이 광주시와 경계를 이루고 서쪽은 인릉산(仁陵山, 326m) · 청계산(淸溪山, 492m) · 국사봉(國師峰, 540m) · 바라산(428m)이 서울시, 과천시, 의왕시 등과 각각 접하고 있다.
지형적 이유로 동쪽에는 대원천 · 야탑천 · 분당천이 서진하여 탄천에 합류하고 서쪽에는 동막천 · 운종천 · 삽적천 등이 동진하여 탄천에 합류한다. 이들 하천은 탄천에 합류하면서 주변을 침식하여 계곡평야를 형성하고 이들 하천과 저수지는 논과 밭의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기온은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데 연평균 기온은 11.2°C, 1월 평균기온은 -5.4°C, 8월 평균기온은 24.5°C이며, 연 강수량은 1,200㎜ 내외이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 유적은 아직 없다. 그러나 이 지역이 한강 하류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고, 이곳의 중심부를 흐르는 탄천 하류의 서울특별시 송파구 가락동과 강남구 역삼동에 구석기시대 유적지가 있어 이 지역에도 구석기시대에 사람이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여주시와 화성시, 광주시 도척(都尺) 등 인근지역에서 구석기가 발견되고, 서울 암사동, 하남시 미사리 등지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신석기시대 유적으로는 금토동에서 민무늬토기, 삼평동에서 빗살무늬토기, 그물추, 민무늬토기, 수진동에서 민무늬토기 등이 발견되어 신석기시대에는 사람이 많이 살았음이 확인되었다.
최근 분당 지역에 대한 ‘성남 분당지구 문화유적지표조사(1989)’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이 지역에 116기나 되는 지석묘와 8기의 적석총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많은 청동기시대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것은 한강 유역의 중부지방에서는 처음 있는 일로서 청동기시대 집중적으로 거주지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중국의 『삼국지(三國志)』에 등장하는 진국(辰國)의 성립 이전시대부터 ‘초기국가’의 형태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심지가 광주(廣州), 즉 오늘날의 성남 지역이라 할 수 있다. 드디어 삼한, 그 중 마한(馬韓)의 중심지가 백제국(伯濟國)으로서 삼국 중 백제로 성장하게 되었다
백제의 한성시대에는 인접한 성남 지역이 역사적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백제가 고구려의 남하로 금강 유역으로 밀려나면서 백제와 신라가 다시 한강 유역을 탈환할 때까지 80여 년간 고구려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다. 고구려는 북한산군을 설치하고 ‘성남 지역’은 여기에 속하게 되었다. 백제와 신라의 협공으로 잠시 백제가 차지하였으나 곧바로 신라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어 통일신라까지 이어진다. 신라는 이 지역을 확보하면서 대당외교에도 직접 나설 수 있고 백제와 고구려의 통로를 차단하게 되었다. 결국 신라가 통일하게 되고, 지방을 9주로 나눌 때 성남 지역은 한산주(漢山州) 또는 한주(漢州)에 속하게 된다. 한산주는 다른 주보다 두 배 이상의 면적에 북방의 국경을 접하고 각 주에 한 개씩밖에 없는 정(停: 지방사단과 같은 군인부대)을 두 개나 두고 패강진(浿江鎭) 등의 군사력도 보유하게 되었다. 통일신라시대 한산주 도독으로 있던 김대문(金大問)이 「한산기(漢山記)」를 지어 이 지역의 경승을 노래하였던 것도 이곳의 빼어난 경치와 풍요한 물산에 대해 감탄했기 때문일 것이다.
후삼국시대 ‘성남 지역’은 일찍이 궁예(弓裔)의 후고구려(태봉)에 속하였다가 왕건(王建)의 고려에 귀속되었다. 비록 태조 왕건이 죽은 뒤에 반역하였지만 통일과정까지 든든한 후원세력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왕규(王規)의 기반이 이곳이었을 것이다. 왕규는 광주(廣州)의 호족으로 두 딸을 태조의 왕비로 들여보내 제15왕비와 제16왕비가 되었다.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혜종 때에 반란을 일으켜 거세되었다.
940년(태조 23) 한주를 광주(廣州)로 바꾸고, 983년(성종 2) 12주에 목을 둘 때 광주목으로 불리었다. 995년 12절도사를 둘 때는 봉국군절도사(奉國軍節度使)로 고쳐 관내도(關內道)에 소속시켰으며, 1012년(현종 3)에는 절도사를 폐하여 안무사(按撫使)를 두었다가 1018년 12목을 줄여 8목으로 고칠 때 광주목으로 되었다. 이때 전국을 5도 양계로 나눌 때 광주는 경기도와 충청도를 관할하는 양광도의 중심지가 되었다. 1310년(충선왕 2) 지주사(知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 목으로 복구되었다.
1395년(태조 4) 광주목은 경기좌도에 소속되었다. 세조 때 진(鎭)을 두어 광주목의 진관 소속으로 여주목(驪州牧) · 이천도호부(利川都護府) · 양근군(楊根郡)과 지평현(砥平縣) · 음죽현(陰竹縣) · 양지현(陽智縣) · 죽산현(竹山縣) · 과천현(果川縣)을 두었다.
1505년(연산군 11) 고을이 잠시 혁파되었다가 중종 초기에 복구되었으며, 1559년(명종 14)에 목사를 두었고 1566년 방어사(防禦使)를 겸하였다.
1573년(선조 6)에는 토포사(討捕使)를 겸하다가 1577년광주부로 승격되었다. 임진왜란 때인 1592년에는 수어부사(守禦副使)를 겸했으며, 1623년(인조 1)에 유수(留守)로 승격되어 수어사를 겸하였다.
1626년 남한산성을 수축하여 이듬해인 1627년 주치(州治)를 성내로 옮겼고 1633년 목사가 토포사를 겸하였으며 1637년 광주부윤(廣州府尹)으로 승격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인조가 난을 피하여 이곳에 이어(移御)하였다. 1652년(효종 3) 수어부사를 두었다가 1655년 부윤으로 복구시켰다. 1683년(숙종 9) 유수 겸 수어사로 승격되었으며, 1690년 부윤 겸 방어사 · 토포사가 다시 설치되었다가 1694년 부윤으로 되었다. 1750년(영조 26) 다시 유수로 승격되어 수어사를 겸하다가 1759년에 부윤으로 되었다. 그리고 1795년(정조 19) 유수 겸 수어사로 승격되었다.
1896년 일제침략에 항거하여 이천과 광주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경기의병진(京畿義兵陣)은 남한산성을 거점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1895년광주군이 되어 한성부의 관할이 되었으며, 1896년경기도 광주부가 되었고, 1906년광주군으로 개칭되었다.
1917년에는 남한산성 안에 있던 군청을 광주면(지금의 광주시 오포읍)으로 옮겼다. 1919년 3월 27일에 중부면 · 동부면 · 서부면에서 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났고, 3월 28일에는 광주읍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1946년 2월 광주군 중부면 성남출장소 설치로 중부면에서 관할하던 남한산성 서남방 12㎢의 일원인 6개 리가 단일 행정구역으로 개편되었다. 1968년 주택단지경영사업인가로 서울시 무허가건물 일소에 따른 철거민정착주택단지로 조성되었다. 이와 함께 개발은 서울시에서, 일반 행정은 경기도에서 관장하는 이원행정체제가 되었다. 1969년에는 주택단지조성작업이 채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철거민이 이송되어 가수용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였다. 1970년 9월 19일경기도와 서울시의 행정협약이 체결되어 이원행정으로 빚어지는 혼란을 수습하였다.
그러나 1971년 8월 10일서울시의 전매입주자에 대한 시가일시불토지불하방침과 경기도의 가옥취득세부과조치 때문에 이것을 시정하도록 요구하고 나선 입주민들의 소요사태를 이룬 8·10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때문에 급팽창하는 도시 규모와 주민에 적응하는 행정체제를 갖추기 위하여 1971년 9월 13일경기도 성남출장소가 설치되어 원래의 중부면 6개 리와 대왕면 · 낙생면 · 돌마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1971년 10월 14일 서울시의 주택단지사업을 경기도에서 인수하여 단지 명을 광주대단지에서 성남단지로 고쳤다. 그리고 그 해 10월 30일에는 성남출장소 관할지 전역과 인접한 용인군 수지면 일부 4.078㎢를 포함하는 132.578㎢(4010만 평) 지역에 대한 장기종합도시기본계획이 되었다.
1973년에 독립시로 승격되어 개발 초기의 무리와 과도기의 혼란 및 기형적 성장 등을 탈피하면서 도시체질을 개선, 현대도시로 탈바꿈하였다. 1989년 5월 구제(區制) 실시에 따라 수정구와 중원구가 설치되었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부동산투기 억제와 수도권 인구분산 등의 계획에 따라, 1989년 4월 27일에 성남시 남단 자연녹지일원에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분당 신도시가 개발되기 전에는 이 지역에는 4천여 가구, 1만 2200명이 살고 있었다. 1989년 11월 5일 1단계공사가 착공되고 1991년 7월 1일 분당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91년 9월 17일분당구로 승격되었으며, 9월 30일 시범단지 첫 입주가 이루어졌다. 1994년 9월 1일 분당선 전철이 개통되고, 1996년 11월 23일 8호선 전철이 개통되어 교통난이 해결되었다.
한편 1992년분당구 분당동에서 초림동과 서현동을 분동, 1993년 1월 20일분당동에서 서당동 · 수내동을, 이매동에서 매송동 · 하탑동을 분동, 1993년 6월 5일분당동에서 내정동, 이매동에서 야탑동 · 중탑동을, 1995년내정동에서 정자동을 분동하였다. 그리고 1996년 1월 15일정자동이 신기동과 불정동으로, 금곡동이 구미동으로 각각 분동되었다. 이처럼 성남시는 법정동 간 경계조정과 행정동 분동을 통해 1996년 3개 구 44개 동의 행정동이 형성되었으며, 2000년에는 행정동 명칭을 대폭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불교 유산으로 약사사 · 대원사 · 봉국사 등이 있다. 수정구 태평동의 봉국사 경내에 봉국사 대광명전과 복정동에 망경암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봉국사 대광명전과 망경암 마애여래좌상은 1980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망경암 마애여래좌상은 남한산성 성벽의 서편 끝에 있는 자연암벽에 부조되어 있는데, 암벽에는 또 여래좌상을 모시기 위한 감실(龕室)이 세워져 있다. 여래상의 주위에는 14군데 명문(銘文)이 있고 1898년에 세운 흰 대리석으로 된 망경암 중수비도 2기가 있다.
분묘로는 분당구 궁내동에 이수(李睟, 자는 明遠)선생의 사당과 그의 묘인 이수선생 묘(경기도 기념물, 1980년 지정), 석운동에 이경석선생 묘(경기도 기념물, 1985년 지정), 청계산에 정일당 강씨의 묘, 수내동에 한산이씨 묘역(경기도 기념물, 1989년 지정), 정자동에 전주이씨 태안군파 묘역(경기도 기념물, 1989년 지정) 등이 있다.
운중동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대방광불화엄경소 권21, 24(보물, 1992년 지정) · 대불정다라니(보물, 1992년 지정) ·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보물, 1992년 지정) · 범망경노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 제10의하(보물, 1992년 지정) ·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보물, 1992년 지정) · 조온 사패왕지(보물, 1992년 지정) · 입학도설(보물, 1992년 지정)이 있다. 서현동의 신간표제공자가어구해(보물, 1993년 지정)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소목장, 나전칠기장, 벼루장, 화각장, 대목장 등은 그 전통적인 기능을 전승, 발전시키고 있다.
남한산성(사적, 1963년 지정)은 북한산성과 함께 도성을 지키던 남부의 산성으로,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45일간 항전하던 곳이며, 그리고 수정구 금토동 일원에 위치한 천림산 봉수는 조선 초기 봉수의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현존하는 봉수 중에 규모가 가장 크고 구조적으로 가장 완벽한 봉수로서 그 국가유산의 가치가 크다.
이 지역은 본래 광주군 지역이었으므로 독자적인 전통 교육기관은 없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47년까지 남한산초등학교 분교인 수진분교가 있었을 뿐이고, 야탑동 등에 1960년대 초에 초등학교 7개교, 중학교 4개교, 고등학교 2개교가 있었다.
1973년 시로 승격됨에 따라 급속한 발전을 보여 대학만도 신구대학교(新丘大學校) · 동서울대학교 · 가천대학교(嘉泉大學校) 글로벌캠퍼스, 을지대학교 성남캠퍼스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68개교, 중학교 45개교, 고등학교 35개교, 특수학교 2개교, 대학교 2개교가 있다. 대학원으로는 가천대학교 가천대학원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이 있다.
연구기관으로는 운중동에 우리나라 국학의 총 본산인 한국학중앙연구원, 하산운동에 현대사회연구소가 있으며, 시흥동에 세종연구소가 있다. 그리고 경기도립성남도서관과 성남시민회관 · 성남문화원 등이 있다.
현대적 전시관 및 박물관으로는 농경유물관, 주거문화관, KT과학관 등이 있다. 주거문화관은 우리나라의 전통가옥 등을 비롯하여 한옥의 건축기법 등을 소개, 경제성장에 따른 최근의 마을 변천 모습, 그리고 세계의 전통가옥과 전문가들이 예측한 미래주거형태도 전시되어 있다. 전시시설로는 한신코아백화점 문화홀 및 분당백화점의 문화홀 등을 들 수 있다. 지역문화복지시설로는 시민사회복지관과 한국선명회 사회복지관이 있으며, 청소년수련시설로는 성남시근로청소년회관이 있다. 문화보급시설로는 성남시에서는 유일하게 성남문화원이 있다.
한편, 대표적인 종합공연장으로 성남시민회관이 있고, 분당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중앙공원 내에 야외공연장을 설립하였으며, 한국도시가스공사의 강당이나 계원예술고등학교 내의 분당 벽강예술회관 등이 개관되어 공연시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영화관으로는 성남극장과 중앙극장, 소극장에는 단대극장, 세종극장, 대한극장, 국도극장, 모란시네마 등과 수정구 신흥동의 한신코아멀티씨네마, 중원구 성남동의 메가시네마, 분당구 야탑동과 오리동에 있는 CGV영화관이 있다.
성남예술제가 매년 10월 개최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쌍룡줄다리기와 성남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 등이 있다.
성남시의 현대적 전시관 및 박물관으로는 농경유물관, 주거문화관, KT과학관 등이 있다.
주거문화관은 우리나라의 전통가옥 등을 비롯 한옥의 건축기법 등을 소개, 경제성장에 따른 최근의 마을변천모습, 그리고 세계의 전통가옥과 전문가들이 예측한 미래주거형태도 전시되어 있다.
현대적 스포츠 시설로는 성남종합운동장과 성남제2종합운동장이 있다.
성남종합운동장은 주경기장, 실내체육관, 하키구장, 보조경기장, 롤러스케이트장, 씨름경기장, 인공암벽 등을 갖추고 있으며,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공원녹지대와 광장, 주차장 등이 조성되어 있어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성남제2종합운동장은 주경기장, 보조구장(야구장)과 수영장, 아이스링크장, 스쿼시, 라켓볼, 다목적체육관, 테니스장 등 다양한 생활체육 시설을 갖추고 있다.
자연마을에서는 정월 열나흘 오곡밥 먹기, 정월 대보름 부럼 깨물기와 더위팔기, 정월 대보름 윷놀이, 정월 고사와 장 담그기, 삼월 한식 성묘하기, 사월 초파일 절에 가서 연등달기, 칠월 복중에 개고기와 삼계탕 먹기, 추석 차례와 성묘하기, 시월 시묘제사와 상달고사, 11월 동지 때 팥죽 먹기 등이 세시풍속으로 행해진다.
그 중에서 정월 대보름에 동사무소에서 일정 금액을 지원하여 ‘척사대회’라는 이름으로 윷놀이를 한다. 이에 비해 쥐불놀이는 서울공항이 생기면서 농토가 줄어들어 그 이후 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입춘방(立春枋)을 붙이는 집은 여전히 많다. 다만 절에서 신도들에게 나눠주는 입춘방으로 대체하는 가정도 많은 편이며, 그 내용은 ‘立春大吉(입춘대길)’이 주를 이룬다. 동지가 되면 팥죽을 끓여 먹는 집은 여전히 많지만, 이웃끼리 나누어 먹는다거나 대문에 뿌리는 등의 전래 민속행위는 행하지 않는다.
민속놀이로는 분당구 판교동(너더리 · 널다리)에서 정월 보름에 행해지는 쌍룡줄다리기가 있다. 조선 중기 약 300년 전부터 풍년을 기원하고 동리의 액운을 막으며 어린이들의 질병과 어른들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거행되었는데 인원의 제한 없이 주민 모두가 참여하고 있다.
집집마다 추렴한 볏짚으로 둘레 50㎝, 길이 50m 되는 청룡(수용) · 황룡(암용)의 두 줄을 만드는데, 청룡인 수줄의 머리는 남성을 상징하여 뭉뚝하게 만들고 황룡인 암줄의 머리는 여성을 상징하여 둥근 고리를 만든다. 놀이를 할 때는 수줄의 뭉뚝한 머리를 암줄의 고리에 넣어 비녀를 꽂듯 통나무로 비녀장 나무를 꽂아 두 줄을 연결시킨다.
보름달이 뜨면 기혼남자가 한편이 되고 기혼여자 · 처녀 · 총각이 한편이 되어 청 · 황의 줄을 어깨에 메고 농악대 · 대장기 · 영기 등을 앞세워 마을을 돌면서 사기를 높인다.
용의 머리에는 남녀 대표가 타게 되는데, 남자 쪽은 근면 · 성실하고 신망이 두터운 사람을 내세우고 여자 쪽은 결혼을 앞둔 처녀가 대표가 된다.
보름달이 중천에 뜨면 쌍룡머리에 비녀장을 질러 줄을 연결하고 줄다리기를 시작하는데, 세 번 겨루어 두 번 이기면 우승하게 된다. 여자편이 이기면 3년 간 풍년이 들고 마을에 재난이 없이 평온하게 살아간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계속 여자편인 황룡이 이겨오고 있다고 한다.
이 고장은 남한산성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남한산성과 관련된 전설이 많으며, 역대 임금과 관련된 전설도 상당수 전한다. 남한산성 서쪽 등성이에 있는 커다란 무덤에는 구렁이와 정을 나눈 총각의 이야기가 얽혀 있다.
약 500년 전 한양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가난한 한 총각이 광주에 있는 친척집에 식량을 얻으러 갔다가 날이 저물어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다. 소나기까지 만나 난감한 지경에 처한 총각은 어둔 속에서 불빛을 발견하고 그 불빛을 따라 한 초가에 이르게 되었다.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다른 수가 없는지라 주인을 찾아 유숙할 것을 청했는데, 주인은 꽃다운 처녀로 총각에게 진수성찬을 대접하였다. 처녀에게 이끌린 총각은 처녀와 하룻밤 인연을 맺게 되었고 날이 밝자 총각은 처녀의 재촉으로 부지런히 길을 떠났다.
처녀를 차마 못 잊은 총각이 도중에서 발을 돌리니, 처녀는 500년 묵은 암구렁이라는 산신령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지만, 총각은 기어이 초가까지 와서 초가 대신 서 있는 고목과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를 발견하고 말았다.
처녀는 총각의 힘을 입어 승천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승천한 뒤 비늘 세 개가 떨어진 자리에 장차 총각의 묘를 쓰면 장수가 태어날 것이라 하였다. 비늘은 떨어져 매화나무가 되었고 총각이 죽어 이곳에 묻히자 그 후손으로 임경업(林慶業)이 태어났다고 한다.
산성 서남쪽에 묻혀 있는 별군관 서흔남(徐欣男)에 얽힌 이야기도 전한다.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파천을 하는데, 전세의 불리한 소식이 전해지자 겁을 먹은 수행원들이 하나 둘 도망하여 인조는 얼마 남지 않은 신하들을 데리고 겨우 송파강을 건넜다.
강은 건넜으나 날은 어두워지고 눈까지 내려 남한산성에 오를 일이 아득하였다. 인조는 신하의 등에 번갈아 업혔으나 지친 군신은 중간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때 나뭇짐을 지고 오던 서흔남이 사정을 듣고 인조를 업어 남한산성으로 모셨다. 인조가 그 공을 치하한 뒤 소원을 묻자, 인조의 곤룡포를 갖고 싶다고 하였다.
신하들은 무례한 그를 꾸짖었으나 인조는 곤룡포를 하사하고, 이에 서흔남은 죽을 때까지 이것을 간직하였다. 그가 죽은 뒤 유언에 따라 곤룡포를 무덤 속에 함께 묻어주었다. 조정에서는 그의 공을 찬양하여 별군관이라는 벼슬을 내렸으며, 관원들이 그의 무덤 앞을 지날 때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한다.
이 밖에 태종이 몸을 불사르려 하였다는 「기우제전설」, 태종과 죽마고우인 이양중(李養中)과의 우정담 등의 설화와 남한산성 곳곳에 있는 우물에 얽힌 전설과 전란 당시의 이야기 등이 많이 전하여 내려온다.
토지의 45.6%가 임야이고 경지는 전체 토지의 7.9%이다. 대지 15.9%, 도로 10.5%, 하천 2.5%, 공장지 0.8%이다. 경지 중 논은 538㏊, 밭은 589㏊이다. 그리고 주변에 낙생저수지 · 분당저수지 · 대왕저수지 등이 있다.
주요 농작물은 쌀 이 외에 콩, 채소류로 시금치 · 배추 · 무 · 상추 · 호박 · 오이 · 고추 · 마늘이 생산되고 과실류로 배가 생산되고 있다. 서울의 위성도시로 포도 · 오이 등과 같은 근교농업이 발달하고 있다. 가축으로는 젖소 · 닭 · 조류 등도 사육된다.
농업인구는 전체 인구의 0.5%인 3,230명이고 제조업 인구는 전체 인구의 3.8%인 3만 7489명이다. 주요 제조업으로 섬유공업 · 조립금속공업 · 종이인쇄공업 등이 발달하고 있다. 신흥동과 상대원동에 성남공업단지가 개설된 이후, 전자 · 정밀기계 공업 등이 발달하였다.
상업시설은 백화점 · 연쇄점 · 일반상점 · 정기시장 등이 발달하고 있다. 특히, 모란시장은 4일과 9일에 열리는 정기시장으로 아직까지 성남시민 뿐 아니라 서울시민까지 자주 찾는 시장의 하나이다. 이곳에서는 일반 상품은 물론 가축류 · 조류 등도 거래되고 있다.
성남시 분당구는 1988년에 신도시로 개발되기 시작하여 1994년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대규모로 인구가 늘어났고, 서울의 위성도시로 가천대학교 글로벌캠퍼스 등 대학 이 외에 대학병원, 백화점, 골프연습장, 유원지 등이 입지하고 있어 3차 산업인구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성남시 개발 초기에 광주대단지가 건설되고 서울의 영동과 잠실이 개발되면서 한남대교와 잠실대교가 건설되자 광진교 하나를 통하여 내왕하던 서울길이 복합적으로 열리게 되었고 경부고속도로가 성남시를 관통하게 되어 한남대교를 이용한 서울 진입과 판교인터체인지를 통한 지방과의 연계교통망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경충국도(3번 국도) 등의 확장과 포장으로 강원 남부와 충북, 경북 지방과의 연계교통망이 형성되고 1980년대 이후 중부고속도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등의 주요 도로들이 준공되면서 남북은 물론 경기 동서간의 교통도 원활하게 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분당신도시가 개발되고 구시가지가 정비됨에 따라 시내 간선도로가 대폭 확장 또는 포장되어 도로교통망이 급속하게 발달하였고, 분당선과 지하철 8호선이 건설되어 지하철 교통도 급속하게 발달하였다. 서울과 수원을 잇는 광역철도 노선인 신분당선이 2011년 개통을 시작하여 성남시를 통과하고 있다. 또 경기도 시흥시와 강원도 강릉시를 이을 예정인 경강선이 부분적으로 개통을 시작하여, 판교역과 이매역이 성남시를 지나고 있다.
먼저 성남시의 골격을 구성하는 주요 도로망은 고속국도 2선, 도시고속화도로 2선, 일반국도 1선, 국가지원지방도 포함 지방도 4선과 다수의 시도로 이루어져 있다. 도로 총연장은 약 572㎞에 달하며, 도로 포장률은 100%이다. 이 가운데 분당구판교분기점에서 十자로 교차하는 경부고속도로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도로망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경충국도(京忠國道)’로도 불리는 3번 국도가 성남 구시가지의 서부와 남부 외곽을 감싸고 있다.
경부고속도로는 성남지역에서 수정구 상적동(서울시계)에서 분당구 구미동(용인시계)까지 지나며,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는 수정구 복정동(서울시계)에서 분당구 운중동(의왕시계)까지 지난다. 조선시대 10개의 큰 도로 중에서 ‘동래로(東萊路)’ 노선이 오늘날 경부고속도로의 달래내고개(月川, 즉 달이내고개) · 험천(동막천)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동서 지역에는 조선시대의 태재, 갈마치 · 판교 · 학고개 · 인덕원의 간선도로가 있었는데, 오늘날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판교 · 평촌)와 거의 같은 기능을 수행하였다.
분당 · 수서 간 도시고속화도로는 연장이 9.954㎞이며, 수정구 복정동(서울시계)에서 분당구 구미동까지 성남시 한가운데를 관통하여 지나고, 분당 · 내곡간 도시고속화도로는 연장이 7.84㎞이며, 수정구 상적동(서울시계)에서 분당구 수내동까지 성남시 북서부 지역을 지나며, 수내동에서 분당 · 수서간 도시고속화도로에 연결된다. 308번 지방도는 수정구 복정동에서 남한산성까지 성남시 최북단을 동서로 횡단하는 연장 6.6㎞의 지방도이며, 389번 지방도는 중원구 하대원동에서 갈현동광주시계까지 중원구 중앙부을 동서로 횡단하는 연장 4.8㎞의 지방도이다.
그리고 23번 국가지원지방도는 수정구 신촌동에서 분당구 금곡동까지 남북으로 관통하는 연장 13.604㎞의 지방도이며, 57번 국가지원지방도는 분당구 운중동에서 분당동까지 연결된 연장 12.913㎞의 지방도이다. 이외에 중앙로(5.775㎞), 공단로(3.48㎞), 성남대로(10.568㎞), 대왕판교로(3.75㎞), 수정로(3.1㎞) 등 다수의 시도가 지나고 있어 관내 도로망들이 잘 연결되어 있다.
성남시와 전국 지역을 연결하는 성남종합버스터미널은 1982년 3월성남시 중원구 성남동에 건립되어, 고속버스 5개 노선과 시외버스 50개 노선을 운행해왔다. 그러나 그동안 시설이 노후되고 비좁은데다 편의시설이 없어 이용객들이 큰 불편을 겪자, 분당구 야탑동에 종합터미널을 새로 건립하기로 결정하고, 1995년에 착공해 2000년 3월 완공된 테마폴리스(고속버스터미널, 시외버스터미널, 상가, 극장 등 복합건물)로 종합터미널을 이전하기로 계획하였다. 2001년 4월 고속버스터미널을 먼저 분당구 야탑동 테마폴리스 지상 1층으로 이전하였고, 2004년 5월 시외버스터미널을 추가 이전하여 고속버스터미널과 시외버스터미널이 통합되어 기존 6개 노선의 고속버스(부산, 대구, 광주, 전주, 마산, 진주) 87회 32대 운영과 시외버스 56개 노선 522회 300대를 통합 운영하게 되었다.
한편 1990년대 분당신도시가 건설되면서 대중교통 수단으로서 지하철이 건설되었다. 분당선은 성남시 분당구 오리역(최근 용인시 보정역까지 연장 운행)에서부터 서울시 강남구 선릉역까지 18개 역을 운행하는 수도권 전철로, 서울시와의 접근성 향상과 분당신도시의 교통편의 제공을 목적으로 1994년에 개통되었다. 성남시를 지나는 분당선 구간은 가천대역, 태평역, 모란역, 야탑역, 서현역, 수내역, 정자역, 미금역, 오리역이며, 모란역과 복정역에서 8호선으로 환승할 수 있다. 그리고 지하철 8호선은 성남시 수정구 모란역에서부터 서울시 강동구 암사역까지 17개 역을 운행하는 전철로 1996년에 개통되었다. 성남시를 지나는 8호선 구간은 복정역, 산성역, 남한산성입구역, 단대오거리역, 신흥역, 수진역, 모란역이며, 모란역과 복정역에서 분당선으로 환승할 수 있다. 2011년부터 개통을 시작한 신분당선은 서울과 수원을 잇는 광역철도 노선으로 판교역과 정자역이 성남시를 통과하고 있다.
성남시의 항공교통으로는 1970년경 수정구 일대에 성남비행장이 들어섰으나, 이 비행장은 국가 안보를 위해 특수목적으로 건설된 군사시설로 공군에서 운영하며 ‘서울비행장’이라고도 불린다.
남한산성도립공원과 분당구의 중앙공원과 율동공원, 수정구의 희망대공원과 단대공원, 그리고 중원구의 은행공원과 황송공원 등의 도시공원 등이 있다.
남한산성도립공원은 성남시, 광주시, 하남시 시계에 위치해 있는 공원으로, 1971년 3월 17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1974년 관광지원에서 남한산성을 관통하여 성남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포장되었다. 이 도로의 포장으로 남한산성 교통망은 크게 개선되었으며, 이후 서울을 비롯한 인근 지역 주민들이 남한산성을 찾기가 매우 용이해졌고, 남한산성도립공원은 역사적, 자연적, 문화적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분당구의 율동공원은 자연호수공원으로 번지점프대와 103m 분수대가 이 공원의 명소이며, 분당신도시의 중심을 이루는 중앙공원은 기존 생태계의 보존을 통한 자연의 공급, 문화유산의 보존과 전통미의 전승, 문화공간 조성을 그 특색으로 하고 있다. 이 공원에는 한산이씨 묘역과 수내동가옥 등 전통문화유산의 수용, 고인돌공원의 조성, 그리고 전통양식의 연못과 누각, 정자, 전망대, 광장, 야외음악당 등이 잘 정비되어 있다.
수정구의 희망대공원은 놀이동산이던 곳을 1997년 공원시설로 바뀌면서 형성된 녹지공간으로, 공원 내에 경기도립성남도서관과 성남시 청소년수련관이 자리잡고 있어, 특히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공원이며, 단대공원은 기존의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자연수림대를 최대한 보존한 공원으로, 수정도서관이 공원에 자리하고 있다.
중원구의 황송공원 특징은 이곳에 있는 어린이교통교육장으로, 어린이에게 이론과 현장학습을 통하여 교통질서의식을 확립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으며, 은행공원은 최근 자연생태관찰원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자연체험 공간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가족공원으로 인기가 높아가고 있다.
아울러 중요한 관광자원인 풍부한 역사적 문화유산과 문화유적들을 보유하고 있다. 분당구 운중동에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는 『대방광불화엄경소』권21, 24를 포함하여 보물 7점의 국가지정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수정구 태평동에 위치한 봉국사 대광명전과 수정구 복정동에 위치한 망경암 마애여래좌상 등 경기도 유형문화유산과, 소목장 · 나전칠기장 · 벼루장 · 화각장 · 대목장 등은 전통 기능장인이 있다.
또 수내동 가옥과 청주한씨 문정공파 묘역 신도비와 이수선생 묘 · 한산이씨 묘역 · 이경석선생 묘 · 전주이씨 태안군파 묘역과 정일당 강씨 묘 · 둔촌 이집선생 묘 · 송산 조견선생 묘 · 금릉 남공철 묘역 · 경헌 조몽정 묘역 등은 물론, 남한산성과 수정구 금토동에 있는 천림산봉수도 유명하다.
모란민속시장은 매월 끝자리 4, 9일에 열리는, 수도권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민속 5일장으로, 화훼, 양곡, 약초, 의류, 신발, 잡화, 생선, 담수어, 야채, 애견, 가금, 음식 등을 취급하고 있으며, 전통민속 재래시장으로서 삶의 생동감이 넘치는 옛장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먹거리촌으로 효자촌 먹거리촌, 서현동 맛고을, 단대동 닭죽촌, 여수동 갈매기촌, 정자동 먹자골목, 야탑동 먹자촌 등이 형성되어 있어 다양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성남예술제가 매년 10월 개최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쌍룡줄다리기와 성남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 등이 있다.
쌍룡줄다리기는 예로부터 판교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에 풍년을 기원하고 액운을 떨쳐 버리기 위해 행해졌던 민속놀이로, 급속한 산업화로 1989년 이후 중단되었다가 2001년에 지역주민들이 널다리 쌍룡줄다리기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다시 재연하게 되었다.
성남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는 집터를 닦고, 다지고 집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으로, 특히 집터 다지는 소리가 잘 발달되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시의 남부에 위치한 구. 면적 69.35㎢, 인구 50만 1889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수내동이다. 본래 광주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광주군 낙생면(樂生面)의 11개 리와 돌마면(突馬面)의 7개 리가 현 분당구 지역에 해당한다.
이후 광주군 돌마면 · 낙생면출장소로 있다가, 1988년성남시 수정 · 중원출장소가 설치된 이후 돌마면 · 낙생면출장소가 폐지되었다. 1989년성남시 남단에 대한 대규모 신도시 건설계획이 착수됨에 따라, 같은 해 6월분당지구 개발지원사무소를 설치, 운영하게 되었다. 이후 신도시에 주민들이 대거 입주함에 따라 1991년 중원구청 분당출장소가 서현동에 설치되기에 이르렀다.
1991년 분당출장소가 분당구로 승격되었고, 이후 계속되는 인구유입으로 분동이 잇따르는 등 많은 행정구역 개편이 있었다. 1992년분당동에서 초림동 · 서현동으로, 1993년에 다시 분당동에서 서당동 · 수내동으로, 그리고 이매동에서 매송동 · 하탑동이 분동되었다.
이후에도 1993년분당동에서 다시 내정동이, 이매동에서 야탑동 · 중탑동으로, 1995년에 내정동에서 정자동이 분리되었다. 1996년정자동에서 신기동 · 불정동으로, 금곡동에서 구미동이 분동되었다.
광주시 · 용인시 · 의왕시와 접하면서 경기 남부로 통하는 관문역할을 담당한다. 북서쪽 의왕시와의 경계에 국사봉(國思峰, 540m)이 우뚝 솟아 있다. 하천으로 북동부에 야탑천, 서부에 운중천 · 석운천, 남부 일대에 백궁천이 흐른다.
이와 함께 운중 · 이매 · 분당 · 서현 · 낙생 등의 저수지가 곳곳에 산재, 이곳이 농경지로서 유력했던 장소였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절대 농경지가 많았던 이곳의 농산물 산출은 이제 옛 명성에 불과하다. 성남시 3개 구 가운데 추곡 수매실적의 상당량이 이곳에서 산출된다는 점에서 광범위한 농경지가 있었다는 흔적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호박 · 배추 등도 미량 산출된다.
교통은 경부고속도로가 구의 한 중앙을 남북으로 통과하고, 이곳에 설치된 판교인터체인지를 통해 전국 주요 도시로의 직행이 가능하다. 특히 1991년에는 경기 북부지역과도 직통할 수 있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만들어졌다.
이 외에도 분당∼수서, 분당∼내곡 간의 고속화도로가 분당을 동서남북으로 연결해 고속도로에 가까운 효과를 내고 있다. 1994년 분당선 지하철이 지나고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이 밖에 393번 지방도가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남북으로 이어지고, 342번 지방도가 서쪽에서 중앙으로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운중동의 한국학중앙연구원 내에 보물로 지정된 대방광불화엄경소 · 대불정다라니 ·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 범망경노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 제10의하 · 백운화상초록불조직심체요절 · 조온 사패왕지 · 입학도설 등이 있다.
또, 궁내동에 이수(李睟)선생 묘, 석운동에 이경석(李景奭)선생 묘, 수내동 중앙공원 안에 16세기 이후에 차례로 조성되었다는 한산이씨(韓山李氏) 묘역과 수내동 가옥, 정자동에 전주이씨 태안군파(全州李氏 泰安君派) 묘역, 율동에 청주한씨 문정공파(淸州韓氏 文靖公派) 묘역 신도비가 있다.
수내(藪內) · 분당(盆唐) · 정자(亭子) · 서현(書峴) · 이매(二梅) · 야탑(野塔) · 판교(板橋) · 금곡(金谷) · 구미(九美) · 궁내(宮內) · 대장(大庄) · 동원(東遠) · 백현(栢峴) · 석운(石雲) · 삼평(三坪) · 오리(梧里) · 율(栗) · 하산운(下山雲) · 운중(雲中) 등 19개 동이 있다.
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구. 면적 45.99㎢ , 인구 21만 9531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신흥동이다.
본래 광주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현 수정구의 대부분은 광주군의 중부면(中部面)과 대왕면(大旺面)으로 나뉘어 있었다.
1973년에 성남시가 광주군에서 승격한 뒤, 1988년에 돌마(突馬) · 대왕(大旺) · 낙생(樂生)의 3개 출장소가 폐지되고 대신 중원출장소와 함께 수정출장소가 만들어졌다. 1989년 행정기능의 효율적인 수행을 위한 구제를 실시하면서 수정출장소가 승격, 신설된 구이다.
서부는 청계산(淸溪山, 583m)과 국사봉 등 비교적 고봉들로 둘러싸인 산록지대에 속하며, 그 밖의 지역은 북서부의 인릉산(仁陵山, 327m)을 제외하면 산지를 찾기 어렵다. 탄천이 중앙을 남북으로 꼬리를 물고 흘러가며, 단대천이 중원구와의 경계지점을 관류한다. 이 외에도 창곡천(倉谷川) · 독정천 · 금사천 · 상적천 등이 구 곳곳을 돌아 흐르며, 중앙에 대왕저수지가 자리 잡고 있다.
단대천 북쪽의 신흥동은 구청 소재지임과 동시에 주택과 공업단지가 몰려있는 구시가지의 중심지역이다.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가구가 급감하고 있지만 탄천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농가가 분포하며 쌀 · 오이 · 호박 · 배추 등이 산출된다. 신흥동 · 수진동 일대는 많은 상가가 자리한 상업중심지를 이루며, 또한 수진동에서는 매우 오래된 모란장이 열린다.
이곳 장 풍경은 옛 시골장의 분위기와 현대화된 느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으며, 전국 시장 가운데 가장 많고 다양한 물품을 선보여 장이 서는 날이면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인파가 모여든다. 구 북부에 하수종말처리장, 남부 하단에 수도권종합정수장 등 상하수도 시설이 고루 분포한다.
경부고속도로가 구의 서부를 통과하며, 1991년 개통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중앙을 종단하면서 경부고속도로와 연결된다. 1996년 개통된 지하철 8호선이 복정역, 산성역, 남한산성입구역, 단대오거리역, 신흥역, 수진역, 모란역 등을 지나 모란역과 복정역에서 분당선과 연계된다.
3번 국도가 지하철 8호선과 병행하면서 구 중앙을 종단한다. 이 외에도 308·389·393번 지방도 가 곳곳에 이어지고, 인구가 집중된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시내외 버스는 물론 각종 교통 편의시설이 분포한다.
문화유적은 태평동에 봉국사 · 봉국사 대광명전, 복정동에 망경암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신흥(新興) · 태평(太平) · 수진(壽進) · 단대(丹垈) · 산성(山城) · 양지(陽地) · 복정(福井) · 창곡(倉谷) · 신촌(新村) · 오야(梧野) · 심곡(深谷) · 고등(高登) · 상적(上笛) · 둔전(屯田) · 시흥(始興) · 금토(金土) · 사송(沙松) 등 17개 동이 있다.
시의 동부에 위치한 구. 면적 26.38㎢ , 인구 25만 4명(2015년 현재). 구청 소재지는 성남동이다. 본래 광주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중원구의 대부분은 광주군의 중부면(中部面)과 돌마면(突馬面) 일부 지역에 해당하였다.
1973년에 성남시가 광주군에서 승격한 뒤, 1988년에 돌마(突馬) · 대왕(大旺) · 낙생(樂生)의 3개 출장소가 폐지되고 대신 수정출장소와 함께 중원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9년 중원출장소가 승격, 신설된 구이다. 북쪽 중앙 끝은 남한산성 성곽과 경계를 이루며, 북동쪽에 광주산맥의 지맥인 검단산(黔丹山, 535m)을 비롯하여 갈마치(葛馬峙) · 불곡산 등의 연봉이 이어진다.
북쪽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단대천이 수정구와 인접해 흐르고, 구 중앙에 대원천이 있다. 이들 하천유역에는 비교적 넓은 충적지가 형성되었으나, 농경지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이다. 중동 · 상대원동 · 성남동 일대는 구의 중심지역으로 시가지가 폭넓게 분포하며, 성남공업 2·3단지가 들어서 있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업체보다는 중소 규모의 다양한 분야의 업체들이 있으며, 사업체 및 종사자 수도 3개 구 가운데 가장 많다. 대표적인 교통망으로 서쪽 끝에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통과하면서 성남인터체인지로 연결되고, 지하철 8호선이 모란역을 통과, 분당까지 연계된다.
그리고 3번 국도가 중앙을 횡단하는 가운데 시내 곳곳의 도로망과 연접하며, 3번 국도와 병행하여 389번 지방도가 서쪽으로 이어진다. 이 외에 인구가 밀집된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시도와 도로망이 촘촘히 깔려 있다. 성남동에 있는 성남공설운동장은 시민들을 위한 체육시설로 각종 체육행사가 자주 열린다.
문화유적은 은행동에 대원사 · 약사사(藥師寺)가 있다.
성남(城南) · 중(中) · 금광(金光) · 은행(銀杏) · 상대원(上大院) · 하대원(下大院) · 여수(麗水) · 도촌(島村) · 갈현(葛峴) 등 9개 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