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래 역사학계에서는 고대국가의 초기 형태를 일반적으로 부족국가(部族國家)라고 호칭하였으나, 그 개념이 다소 모호하기 때문에 1970년대 초부터 천관우(千寬宇)·이기백(李基白) 등이 이를 성읍국가로 고쳐 부르자고 제안하였다. 이후 이 용어는 많은 연구자들의 지지를 받아 학계에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성읍국가설의 근거는 서양학계의 경우 고대국가의 초기 형태를 주로 지연적(地緣的) 구조에 입각하여 도시국가 혹은 성채국가(城砦國家)로 호칭하고 있으며, 실제로 한국 고대의 경우에도 ≪삼국사기≫ 등의 역사서에 기록된 건국 초기의 국가 형태에 대한 설명 중 도읍에 성곽을 쌓은 사실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는 초기에 주변의 여러 정치 세력들을 정복, 병합해 가는 가운데 국가의 기틀을 확립해 갔는데, 이 때 일단 정복된 정치세력을 ‘성읍(城邑)’으로 삼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같은 설명을 빌려 국가의 초기 형태를 성읍국가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으로 본다.
더욱이 성읍국가라는 용어는 세계학계의 도시국가 혹은 성채국가를 연상시키므로, 한국사를 세계사와 연결시켜 주는 구실을 담당하기도 한다. 성읍국가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몇 개 성읍국가가 느슨한 형태로 뭉쳐 있는 국가단계를 영역국가(領域國家 또는 領土國家) 혹은 연맹왕국(聯盟王國)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한편 성읍국가 대신에 소국(小國) 혹은 미국 사회인류학자들의 개념인 ‘치프덤(chiefdom)’을 고집하는 연구자도 있다. 그리하여 최근 이를 군장국가(君長國家)로 통일한 바 있다. →군장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