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역 학생운동의 지도적 학생결사로서 항일민족독립이라는 한민족 공통의 대국적 상황을 학생의 처지에서 집약하고 광주학생계의 현실에서 조직화한 항일적 교양과 저항을 목적으로 하였다.
광주의 부동정(不動町 : 지금의 불로동)에 있던 최규창(崔圭昌)의 하숙집에서 광주고등보통학교생 김광용(金匡溶)·정우채(鄭瑀采)·임주홍(林周弘)·국순엽(鞠淳葉)·안종익(安鍾翊)·김창주(金昌柱)·최용호(崔鎔鎬) 등 7명과 광주농업학교생 정남균(鄭南均)·정동수(鄭東秀)·문승수(文升洙)·정종석(鄭鍾奭)·김한필(金漢苾)·박인생(朴仁生) 등 6명이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목표로 조직하였다.
초창기의 조직은 총무 왕재일(王在一), 서기 박인생(朴仁生), 회계 장재성(張載性)이었다. 회비는 1개월에 10전씩 갹출하도록 하였으며, 매월 제1·3의 토요일에 회합하여 연구와 아울러 비밀엄수와 동지포섭을 결의하였다.
또한 조선의 독립, 사회과학의 연구, 식민지교육체제의 반대 등 뚜렷한 민족적·사회적 방향을 대전제로 하였다. 이러한 성진회도 주요구성원의 졸업으로 인한 조직내용의 전환이 필요하게 됨에 따라 독서회로 확대 개편되었다. →독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