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이익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74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그 뒤 1827년(순조 27)에 쓴 발문과 1890년(고종 27)에 쓴 발문이 실려 있으나 이 때 간행된 판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으므로 간행 여부도 미상이다. 그 뒤 1917년 그의 7대 손 덕구(德九)와 후손 병주(炳主) 등에 의해 밀양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된 52권 27책의 『성호선생문집』이 있다.
그리고 1922년 이좌(李佐)·안희원(安禧遠) 등에 의해 『성호선생전집』이 간행되었다. 또한 『성호잡저』라 하여 필사본이 전해 온다. 이 밖에 1929년 10권 5책으로 인쇄된 『성호사설(星湖僿說)』이 널리 유포되어 있는데, 이 책은 백과사전식 유서(類書)이다.
서지적 사항
내용
이 가운데 권9∼37까지의 서(書)에는 선배·친우 그리고 후배·문생들과 주고받은 편지로, 대개 유가 경전에서의 이설(異說) 또는 의문처에 대한 문답, 사단(四端)·칠정(七情)·이기(理氣)와 같은 성리설에 대한 문답, 가례(家禮)·상제(喪祭)·복제(服制) 등 예설에 관한 논란, 그리고 정전지설(井田之說)·결부지법(結負之法) 등 당시의 폐정(弊政)을 논한 실학적인 내용들이 실려 있다.
권38에서 48까지의 잡저에는 「의례경전상복지의(儀禮經傳喪服志疑)」·「가례보복간오(家禮補服刊誤)」·「독정우복선생논예기의(讀鄭愚伏先生論禮記疑)」 등 경전 및 예설에 대해 논변한 것을 비롯, 「반함설(飯含說)」·「염금설(殮衾說)」·「염교설(殮絞說)」·「조석곡전설(朝夕哭奠說)」·「상식설(上食說)」 등과 같이 상례에 관한 논변을 상세하게 서술하였다.
그 밖에도 「제식(祭式)」·「기제(忌祭)」·「묘제(墓祭)」·「혼서식(婚書式)」과 같이 제례·혼례 등에 관한 논변이 있다.
특히, 실학적인 내용으로는 「일월식변(日月食辨)」·「황도변(黃道辨)」·「망해도해(望海島解)」 등이 있고, 「논학제(論學制)」·「논과거(論科擧)」·「논붕당(論朋黨)」·「논전제(論田制)」·「논경장(論更張)」·「논노비(論奴婢)」 등과 같이 당시의 폐정을 바로잡고 경제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인습을 개혁하고자 하는 논술이 실려 있다.
그 밖에도 역사적인 논의, 인격 수양에 관한 논변 등 176개 항목의 잡저가 다양하게 실려 있다. 서(序)는 「맹자질서서(孟子疾書序)」·「대학질서서(大學疾書序)」·「성호사설서(星湖僿說序)」 등 자신의 저술에 대한 서문이 대부분이다.
부록에는 이익의 가계·행적 등을 밝히고 그를 찬양하는 글이 실려 있다. 가장은 조카인 병휴가 쓰고, 행장은 문인 윤동규(尹東奎)가 쓴 것이다. 묘갈명은 채제공(蔡濟恭)이 썼고, 연설(筵說)은 유후조(柳厚祚)가 추존을 상주한 글이다. 제문은 안정복(安鼎福) 등이, 찬은 이정두(李廷斗) 등이 썼다.
의의와 평가
이 책과는 별도로 『성호잡저』는 그의 잡저류만을 모아 엮은 책으로, 위의 전서에 실려 있는 것이 대부분이나, 전서에 실려 있지 않은 부분도 20여 편이나 된다.
참고문헌
- 『성호집(星湖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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