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경기·청소년·문화·학술행사 등 우리 민족의 얼과 흥이 깃든 종합축제를 펼침으로써 민족의 동질성과 화합을 다지고 나아가 조국 통일의 염원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 민족의 새로운 신화를 창출했던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의 1주년이 되는 1989년 세계한민족체육대회(The World Korean Ethnics Sports)로 시작하였다. 이 행사는 그 뒤 2년마다 개최되고 있다. 1991년의 두 번째 행사부터 체육행사에 청소년·문화·학술행사를 추가하였고, 1993년 세 번째 행사까지 4,000명의 재외동포가 이 행사를 통하여 꿈에 그리던 고국을 방문할 수 있었다.
‘한민족 한마음 영원한 내조국’이라는 표어 아래 ‘고향의 봄’을 대회가로 한 이 축전은 한번도 한국을 방문하지 못하였거나 조국을 떠난 지 오래된 재외동포를 우선적으로 초청함으로써 모처럼의 모국방문에서 국내동포들과 함께 손잡고 재회의 기쁨을 나눔은 물론 조국의 발전상을 보여줌으로써 ‘한 민족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으로 생각’케 하고 이들이 현지에 돌아가서도 무한한 자긍심을 가지고 생활해 가도록 하는 효과를 올리고 있다.
세계 5대주 6대양에 진출해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은 1981년 9월 서울이 일본 나고야(名古屋)를 누르고 제24회 하계올림픽대회 개최지로 결정되었을 때 국내동포 못지 않게 더 감격스러워 하였다. 중국과 독립국가연합(CIS)에 살고 있는 250만 명의 동포들은 서울올림픽을 통하여 꿈에서만 그리던 조국의 발전된 모습을 TV로 보며 가난하고 어려웠던 예전의 조국이 아님을 확인하고 긍지를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각국의 우리 동포들은 모국의 자랑스런 존재를 인식하여 꿈에 그리던 조국을 찾아보고자 모국방문을 염원하였다.
정부는 이와 같은 동포들의 염원을 수렴, 서울올림픽 1주년기념사업의 하나로 1989년 9월 제70회 전국체육대회와 병행하여 대한체육회 주관으로 세계한민족체육대회를 개최하였다. 행사 후 정부 및 유관단체는 평가회를 통하여 축전을 2년마다 열기로 하고 행사도 단순한 체육행사에서 청소년·문화·학술 등의 종합축제로 바꾸기로 하였다.
(1) 제1회
체육대회로 열린 제1회 행사는 1989년 9월 제70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과 함께 수원에서 개회식을 가진 뒤 서울과 수원·안양·용인·오산 등 경기도일원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그간 이념의 벽으로 고국과 단절되어 있던 중국과 소련을 비롯한 50개 국에서 1,326명이 참여한 첫 행사의 경기종목은 육상·수영·축구·배구·탁구·배드민턴·테니스·유도·복싱 등 올림픽종목 9개와 씨름·그네뛰기·널뛰기·활쏘기·줄다리기·연날리기·장기·바둑 등 민속경기 8종목으로 모두 17종이었다.
올림픽종목과 민속경기를 함께 채택함으로써 참가 해외동포들에게 민족, 민속축제에 참여할 기회를 부여하였고, 행사기간 동안 전통식음료 대회, 해외동포예술단 초청공연, 한민족 함께 달리기대회 등을 개최하여 국내동포들과 함께 어울리며 조국의 문화와 동질성을 확인하게 하였다.
(2) 제2회
두 번째 대회는 한민족행사의 조직과 운영을 전담하기 위한 별도기구로서 재단법인 세계한민족체전위원회(KESC:The World Korean Ethnics Sports Festival Committee)를 발족하여 행사를 격년제로 정례화시키는 한편, 행사규모 역시 체육행사뿐 아니라 청소년·문화·학술행사를 포함하여 민족의 종합축제로 확산시켰고, 1991년 9월 11일부터 10일간 서울올림픽 주경기장 및 서울올림픽공원일원에서 열렸다.
참가자는 85개 국에서 1,601명이었다. 체육행사 종목은 육상·축구·배구·탁구·배드민턴 등 일반종목 5개에 민속경기를 씨름·활쏘기·그네뛰기·널뛰기·연날리기·바둑·제기차기·윷놀이·쌀가마나르기·줄다리기 등 11종목으로 늘렸다. 해외동포 청소년도 처음으로 282명을 초청, 한국사, 문화연수, 유적지순례 등의 프로그램을 통하여 재외동포 2, 3세들에게 조국의 얼과 문화를 전수하였다.
소련(현재 카자흐스탄공화국) 알마아타의 조선가무단을 초청한 한민족연극예술제를 비롯하여 한민족초청음악회, 한민족체 전 축하공연, 중국동포사진전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렸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과 공동주최한 학 술행사는 ‘세계속의 한국문화’를 주제로 82명의 재외동포 학자 등이 참가한 가운데 한민족학술회의가 열렸고, 한민족통일문제토론회도 함께 개최되었다.
그 밖에도 개·폐회식과 환영·환송연, 공원축제, 지리산·설악산·경주 등지의 전통마을을 방문한 고향탐방 등의 다채로운 행사로 국내외 동포간에 화합의 장을 마련하였다.
(3) 제3회
1993년 세 번째 행사부터는 개최 횟수를 개최 연도로 바꾸고 대회명칭 중 ‘체전’을 ‘축전’으로 바꾸어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였다. 또한 청소년들의 행사 참가편의를 위하여 청소년행사를 방학중인 7월로 분리 개최하고 행사일정도 8일간으로 조정하였다.
참가인원은 총 85개 국에서 1,020명이었다. 국내청소년 등 76개국 480명이 참가한 청소년행사는 여름방학중인 7월 23일부터 30일 사이에 개최되었다. 젊음의 한마당, 우정의 시간, 힘겨루기, 세계민속제, 조국사랑발표회 등의 전통문화 학습, 대전엑스포 방문, 민속촌 방문, 산업시찰, 청와대 방문, 통일전망대 방문, 서울 및 한강 유람 등 다양한 행사로 엮어진 청소년들만의 한마당 축제였다.
그 밖에도 청소년음악회, 미술작품공모전 등 문화행사도 열려 민족문화의 해외전파에도 기여하였다. 9월 17일부터 8일간 열린 성인들 행사는 2인3각달리기·족구·피구·쌀가마나르기·물동이나르기·협동줄넘기·널뛰기·씨름·활쏘기·투호놀이·연날리기·제기차기·그네뛰기·줄다리기 등 체육행사를 완전히 민속경기로 바꿈으로써 우리 민족의 새로운 축제문화 창출의 기반을 다졌다.
재외동포 74명이 참가한 ’93축전의 세계한민족학술회의는 ‘세계 속의 한민족’을 주제로 삼고 3개 분과로 나누어 자랑스런 한국인, 21세기 한민족의 역할, 재외 한인사회의 문화적 변용 양상, 바람직한 교민정책, 재외 한인의 정체성문제와 교육, 현지사회의 체제변화와 한인사회의 지향 등을 소주제로 하여 심도있는 토론을 펼쳤다.
한민족축전을 주관해 온 세계한민족체전위원회는 정부의 유사단체 통합방침에 따라 1994년 8월 1일 국민생활체육협의회(NACOSA:The National Conunil of Sports for All)와 통합, 협의회의 한민족축전본부가 지속적으로 세계한민족축전을 준비, 개최하게 되었다.
(4) 제4회
네번째가 된 1995년도 한민족축전은 조국 광복 50주년의 뜻깊은 해를 맞아 8월 11일부터 18일까지 국내외 동포가 함께 하는 보다 성대하고 신명나는 축전으로 치루었다.
성인행사 위주로 개최된 ’95축전은 총 95개 국에서 953명이 참가하였다. 조국을 자주 방문하지 못했던 동포 외에 독립유공자, 국위선양 동포, 한인단체대표 등의 특별인사들도 함께 초청하여 조국광복의 기쁨을 함께 하였다.
이와 같은 세계한민족축전은 정치외교적으로는 민족화합도모, 조국애와 동포애 함양, 한민족의 동질성 회복, 평화통일방안 모색, 한민족 뿌리 찾기의 계기, 세계 속의 한국발전 도모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사회문화적으로는 민족적 자긍심 고취, 민속경기의 세계화, 한민족 문화역량의 과시, 동포간 예술적 공감대 형성, 서울올림픽 성과의 계승 확산, 민족의식의 선진화 등을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효과들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민족축전을 통하여 고국을 다녀간 해외동포는 친목모임 등을 결성하고 내방객 안내 등 고국을 돕는 일에 앞장 서고 있다. 브라질·캐나다 등 여러 나라 동포사회에는 교민민속행사를 통하여 화합을 다지면서 민족의 얼을 심어가고 있다.
국민생활체육협의회는 한민족축전을 통하여 조국을 떠나 살고 있는 500만 명 재외동포들을 한민족 한마음으로 묶고 이를 통하여 조국의 평화통일의 기반조성에도 크게 기여하고자 한다.
이런 관점에서 세계한민족축전은 타민족에게는 유례가 없는 우리 민족만의 유일한 축전이고, 국내외 동포가 한자리에 함께 손잡고 벌이는 한마당 화합의 축전이다. 그리고 체육, 청소년, 문화, 학술이 조화를 이루는 일체의 축전이고, 서울올림픽의 성과 확산과 한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조국애 함양을 통한 통일기반을 조성하는 통일의 축전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