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종 때의 대사헌 조광조(趙光祖)의 수제자인 조욱(趙昱)이 기묘사화의 여화를 피하여 낙향하여 제자들과 더불어 도학을 강론하던 정자이다. 조욱을 가리켜 그 문하생이나 주위 사람들이 용문선생(龍門先生)이라 하였다.
정자로부터 300보 정도 앞으로 가면 바위에 용문선생이 손수 ‘平壤趙氏世藏洞口(평양조씨세장동구)’라고 새긴 글자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정자 바로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으며, 또 주위에는 노송과 고목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정자는 5평 크기의 팔작지붕으로 된 목조건물이며, 1985년 군에서 원형 그대로 중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