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신라를 구성한 육촌(六村)의 하나인 고허촌(高墟村)의 촌장으로, 뒤에 육부(六部)의 하나인 사량부(沙梁部)의 시조가 되었다. ≪삼국사기≫에는 소벌공(蘇伐公)이라 했는데, ‘소벌’은 신라의 옛 칭호인 ‘서라벌(徐羅伐)’을 약칭한 ‘서벌(徐伐)’이라 생각된다.
한편 도리는 집단의 뜻을 가진 ‘돌’·‘두레’의 사음(寫音 : 소리를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라 짐작된다. 또 고허촌의 ‘고허’는 ‘소벌’의 한역(漢譯)일 것이라 짐작된다.
≪삼국유사≫의 전설적인 기사에 따르면, 처음에 육촌에 소벌도리와 알평(謁平 : 及梁部의 시조)·구례마(俱禮馬 : 牟梁部의 시조)·지백호(智伯虎 : 本彼部의 시조)·지타(祉沱 또는 只他 : 韓岐部의 시조)·호진(虎珍 : 習比部의 시조)의 6명이 하늘에서 내려와 각기 육촌의 촌장이 되고, 동시에 육부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 뒤 기원전 69년 3월 1일에 소벌도리 등 육촌의 우두머리들이 각기 자제들을 이끌고 알천(閼川) 기슭에 모여, 덕이 있는 자를 찾아 군왕으로 삼을 것과 수도를 정할 것을 의결했다고 한다.
이에 양산(楊山 :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 南山) 아래 나정(蘿井) 곁에서 발견된 알을 깨고 나온 아이 혁거세(赫居世)를 거슬한(居瑟邯, 居西干)으로 추대하고, 기원전 57년에 그를 왕으로 삼았다고 한다.
한편 ≪삼국사기≫에 따르면, 나정 곁에서 혁거세를 발견한 사람이 소벌공, 곧 소벌도리였다고 하며, 그는 혁거세를 집에 데리고 와서 10여 세가 될 때까지 양육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전설은 씨족장들이 모여 부족장을 선출하던 원시 신라 사회의 모습을 전하는 것으로 해석되며, 따라서 소벌도리 등 이른바 촌장들은 원시 신라를 구성하던 유력한 씨족장들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