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헌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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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때의 학자, 이도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97년에 간행한 시문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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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때의 학자, 이도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97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897년 이도일의 8대손 이승영(李承永)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이종기(李種杞)의 서문, 권말에 이승영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2권 1책. 목활자본.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상에 시 19수, 만사 3수, 서(書) 1편, 찬(贊) 1편, 기(記) 1편, 제문 2편, 소(疏) 1편, 권하에 부록으로 가장·유사·행장·묘갈명·묘지명·기·상량문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순후하면서도 건아한 기풍이 있어 읽는 이에게 친근한 느낌을 준다. 「청송사증별허희화(靑松寺贈別許熙和)」는 평생의 지기였던 허희화와 만나 진진한 정회를 나누고 헤어짐에 앞서 허전한 마음을 잘 묘사한 것이다. 「우음(偶吟)」 2수는 초연한 경지에서 바라본 인간의 성쇠고락을 묘사하고, 사물의 무상함을 노래하였다. 「한강선생찬(寒岡先生贊)」에서는 스승 정구(鄭逑)가 주희(朱憙)의 연원을 이은 이황(李滉)의 정맥을 이어 후진을 교육한 공로를 추숭하고 정구의 인격을 매화의 향기에 견주고 있다.

「사직소(辭職疏)」는 칠원현감을 사직하면서 올린 글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병자호란을 겪은 뒤 도탄에 빠진 참혹한 민생의 모습과 파괴된 도성의 참상을 들어 말하고, 하루 빨리 이 수치를 씻고 자강의 계책을 강구할 때 오히려 전날의 재난은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밖에도 무릎을 겨우 들일 정도의 작은 집이라는 뜻의 「용슬헌기(容膝軒記)」에는 삶의 태도와 학문하는 마음가짐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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