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유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후기 해도상원수, 만호 등을 역임한 무신.
인물/전통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 사망 연도미상
  • 주요 관직해도상원수|만호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정신 (고려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후기 해도상원수, 만호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1376년(우왕 2) 밀직부사(密直副使)·해도상원수(海道上元帥)를 겸임하였다가 1377년 만호(萬戶)가 되었다. 이 때 왜적이 밤에 착량(窄梁: 지금의 수원 지역)에 들어와 전함(戰艦) 50여 척을 불태우니 죽은 자가 1,000여 명에 이르렀는데, 손광유는 화살에 맞아 배를 타고 도망하여 겨우 위기를 면하였다.

이보다 먼저 최영(崔瑩)이 착량강 어귀에만 머물며 군대의 위엄을 보이고 바다에 나가지 말도록 지시하였는데, 손광유는 이를 어기고 착량을 떠나 술을 마시고 깊은 잠이 들었다가 참패를 당한 것이었다. 이에 집이 적몰되고 유배되었다가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으로 이성계(李成桂)·조민수(曺敏修)가 실권을 잡은 뒤인 1388년(창왕 즉위년) 8월 창왕(昌王)의 생일을 기하여 사면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