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용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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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물
해방 이후 「윤봉길의사」, 「고려방직」, 「사랑을 찾아서」 등의 작품에 관여한 영화인. 영화촬영기사.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8년
사망 연도
1967년
출생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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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윤봉길의사」, 「고려방직」, 「사랑을 찾아서」 등의 작품에 관여한 영화인. 영화촬영기사.
내용

서울출생. 한국영화 초창기부터 촬영기사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때로는 제작·기획자로서 또는 현상기사로서 활약하였다.

「사랑을 찾아서」(원명: 두만강을 건너서, 1928)·「사나이」(1928)·「벙어리 삼룡」(1929)·「바다와 싸우는 사람들」(1930)·「수일과 순애」(1931)·「갈대꽃」(1931)·「개화당이문(開化黨異聞)」(1932)·「종로」(1933)·「강건너 마을」(1935)·「역습」(1936)·「칠번통소사건(七番通小事件)」(1936) 등의 무성영화 작품을 촬영하였다.

일제말 조선총독부의 탄압과 일본어사용 강요로 은퇴상태에 있었으나, 광복 후에는 항일계몽영화에 전념하였다. 「윤봉길의사」(1947)·「유관순」(1948)·「안창남비행사(安昌男飛行士)」(1949)·「애국자의 아들」(1949) 및 기록영화로 「고려방직」(1949)·「육군포병학교」(1951) 등이 있으며, 6·25사변 뒤에는 주로 현상소운영에 종사하였다.

애국열에 불타는 영화인동지들과 ‘계몽영화협회’를 설립하여 민족계몽에 열성을 다하다가, 신병으로 오랜 기간 영화계를 떠나 있었다.

참고문헌

『한국영화총서(韓國映畵叢書)』(한국영화진흥조합, 1972)
『한국영화전사(韓國映畵全史)』(이영일, 삼애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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