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은 주희와 그 문인 및 사숙제자(私淑諸子) 등 송·명나라 때의 주자학파를 본집에, 그리고 비정통 주자학파를 외집에 수록하기로 하고, 『주자실기(朱子實記)』·『주자어류(朱子語類)』·『송사(宋史)』·『원사(元史)』·『사문유취(事文類聚)』 등을 참고하여 본집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외집을 준비하다가 완성하지 못한 채 죽자, 1576년(선조 9) 조목(趙穆) 등 문인들이 안동에서 초간본을 간행하였다. 그 뒤 1743년(영조 19)에 도산서원에서 12권 6책의 목판본으로 중간(重刊)되었고, 그 뒤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중간되어 12권 8책본, 10권 5책본 등 여러 판본이 전해지고 있다.
12권 11책. 목판본. 권두에 목록·소서(小序)와 끝에 조목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1∼7에는 주희와 그 문인들의 언행, 권8은 주희의 문인과 장식(張栻) 및 그 제자들의 언행, 권9는 사숙제자들의 언행, 권10·11은 원·명나라의 사숙제자들의 언행, 마지막 권은 외집(外集)으로 송계(宋季)의 제자들의 언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 이름을 『송계원명이학통록』이라 하였으나, 명나라의 학자로는 하의려(賀醫閭) 한 사람만이 본집에 수록되어 있고, 나흠순(羅欽順)·조단(曹端)은 부록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본래 이름은 ‘송원록(宋元錄)’이었는데 후에 제자들이 현재와 같이 고쳤다. 명나라의 정통 주자학자를 수록하지 않은 이유는 『황명이학명신언행록(皇明理學名臣言行錄)』과 중복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주희와 함께 『근사록』을 편찬하였던 여조겸(呂祖謙)이나 같은 시기의 진부량(陳傅良)을 수록하지 않고 장식과 그의 문인들까지 본집에 수록한 것으로 보아, 이 책은 정통 주자학파만을 가려 뽑았고 다른 학파에 대해서는 외집에 싣든가 아예 수록하지 않는 입장을 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