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벽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순천부사, 청송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문성(文星)
  • 응봉(鷹峯)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야성(冶城)
  • 사망 연도1701년(숙종 2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순천부사|청송부사
  • 출생 연도1628년(인조 6)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윤혁동 (성균관,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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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순천부사, 청송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야성(冶城). 자는 문성(文星), 호는 응봉(鷹峯). 아버지는 진사 송상헌(宋尙憲)이며, 어머니는 선성김씨(宣城金氏)로 교수(敎授) 김우인(金友仁)의 딸이다. 작은아버지 송남파(宋南坡)의 문하에서 수학, 퇴도(退陶)의 학문에 힘썼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57년(효종 8) 사마시에 합격하고, 1663년(현종 4) 전시에서 장원으로 발탁되어 승문원에 배속되었다. 1669년 박사로 승진하였고, 다음 해에 가주서(假注書), 1671년에 정언, 1673년 승정원주서를 역임하였고, 이조의 좌랑·정랑을 거쳐 1675년 순천부사가 되었다.

그 뒤 장악원별제(掌樂院別提)·대구부사·단천부사 등을 거쳐서 다시 악정(樂正)이 되었는데, 이 때 시국이 소란하자 자청하여 영암재(靈巖宰)로 파견나갔다.

그 뒤 민비(閔妃)가 환가하고 박태보(朴泰輔)가 직언하다가 장살되는 등 어려운 때에 다시 헌납이 되었다가 청송부사로 파견되었다. 1693년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가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저서로는 『응봉유고(鷹峯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 - 『응봉유고(鷹峯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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