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

대동여지도 중 충청북도 청주, 보은 부분
대동여지도 중 충청북도 청주, 보은 부분
인문지리
지명
충청북도 중서부에 위치한 시.
이칭
이칭
주성(舟城)
지명/행정지명·마을
면적
941㎢
인구
85만 4537명[2024년 12월 31일 기준]
행정구역
충청북도 청주시
도청 소재지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
시청 소재지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1가
공식 홈페이지
https://www.cheongj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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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청주시는 충청북도 중서부에 위치한 시이다. 동쪽과 남쪽은 충청북도 괴산군·보은군, 대전광역시, 서쪽은 세종특별자치시, 북쪽은 충청북도 천안시·진천군·증평군과 접한다. 삼국시대에는 군사상 요충지로 백제와 신라의 각축장이 되었다. 2014년 청원군과 합하여 통합 청주시로 출범하였다. 지역내총생산이 충청북도의 약 50%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도 지역 경제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941㎢, 인구는 85만 4537명이다. 행정구역은 4개 구, 3개 읍, 10개 면, 30개 행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의
충청북도 중서부에 위치한 시.
개관

충청북도 중서부에 위치한 청주시는 동쪽과 남쪽은 충청북도 괴산군 · 보은군, 대전광역시, 서쪽은 세종특별자치시, 북쪽은 충청북도 천안시 · 진천군 · 증평군과 접한다. 삼국시대에는 군사상 요충지로 백제신라의 각축장이 되기도 하였다. 2014년 청원군과 합하여 통합 청주시로 출범하였다. 지역내총생산[GRDP]이 충청북도의 약 50%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도 지역 경제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7°16′~127°46′, 북위 36°24′~36°46′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941㎢이고, 인구는 85만 4537명이다. 행정구역은 4개 구, 3개 읍, 10개 면, 30개 행정동[82개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주시청은 상당구 북문로1가에 있으며, 2028년 완공을 목표로 옛 청주시청 자리인 상당구 북문로3가에 신청사를 건립 중이다. 충청북도청이 상당구 문화동에 있다.

자연환경

동부의 산지는 노령산맥 지맥으로 괴산군의 좌구산(座龜山: 657.7m)에서 분기한 상당산(上黨山: 491m), 선도산(先到山: 547.2m), 선두산(先頭山: 526.5m), 관봉(冠峰: 409.4m), 태봉(胎峰: 219.7m)의 순서로 남주하고, 상당산에서 분기한 우암산(牛巖山: 353m)이 남서 방향으로 뻗어 시가지 동쪽에 급사면을 이루고 있다. 서부는 부모산(父母山: 232.5m), 팔봉산(八峰山: 297.4m), 망일산(望日山), 국사봉(國師峰: 282.5m), 봉무산(鳳舞山: 346.9m), 작두산(鵲頭山: 430.2m), 노고봉(老姑峰: 305.5m) 등의 잔구성 산지가 산재하고 있다.

상당구 낭성면 국절봉[564m]에서 발원한 무심천(無心川)이 북류하면서 시가지 중앙부를 통과해 청주시 흥덕구 원평동에서 미호천에 합류한다. 무심천은 동쪽의 산지와 서쪽의 구릉지를 끼고 남북 방향으로 흐르면서 주1를 형성하였고, 대부분 평야는 범람원으로 비옥한 충적평야를 이루고 있다.

시역 내의 평지는 거의 시가지화되었으나 남쪽의 방서리 부근 대머리평야와 북쪽의 무심천 하류 오창평야는 비옥한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다. 상당산에서 발원한 금천(金川)[쇠내]이 서류하면서 용암동 명암지(明岩池)를 이루고 석교동 부근에서 무심천과 합류하고 있으나 부근의 대부분 지역은 시가지화되었다.

지형이 풍수지리상 행주형(行舟形)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淸州 龍頭寺址 鐵幢竿)을 세웠다고 전한다.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부르게 된 것도 이러한 형국에서 비롯되었다. 무심천은 청주의 동부와 서부를 가르는 지형적 경계이자, 유구한 역사 속에서 청주의 생명선 역할을 해 온 하천으로, 맑고 깨끗한 물줄기는 청주의 이미지를 상징한다. 하천 주변에는 고수부지와 주차장 등의 편의시설이 조성되어 시민들의 축제와 여가 활동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내륙분지에 위치하여 한서(寒暑)의 차가 심한 대륙성기후를 띠며, 대청댐을 조성한 영향으로 인하여 가끔 안개가 낀다. 2022년 기준 연평균기온은 13.9℃, 최저기온은 –13.9℃, 최고기온은 36.0℃이며, 연강수량은 1,236㎜이다.

역사

구석기시대뗀석기가 서원구 개신동과 상당구 명암동, 청원구 율양동에서 발견되었고, 신석기시대의 유물 · 유적이 청원구 내덕동 · 율양동에서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이 지역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부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한시대에는 마한(馬韓)의 한 나라가 이곳에 있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가 먼저 이곳을 차지해 상당현(上黨縣) 혹은 낭비성(娘臂城), 낭자곡(娘子谷)이라 했으며, 군사상 요충지로 백제와 신라의 각축장이 되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인 685년(신문왕 5) 서원소경(西原小京)을 두고 아찬(阿飡) 원태(元泰: ?~?)로 사신(仕臣)을 삼았으며, 689년 서원경성(西原京城)을 쌓았다.

757년(경덕왕 16) 서원경으로 승격하여 정치 · 군사적으로 중요시되었고, 그 후 중부지방의 웅도(雄都)로서 지방문화의 중심시가 되었다. 770년(혜공왕 6)에는 왕이 순행(巡幸)하기도 하였다. 1933년 일본의 쇼소원[(正倉院]에서 발견된 「신라촌락문서(新羅村落文書)」에 통일신라 시기 서원경에 속했던 사해점촌(沙害漸村), 살하지촌(薩下知村) 등 4개 촌의 호구 수와 토지 결수가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사회 · 경제 구조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료로 활용되고 있다. 후삼국 때에는 태봉(泰封)후백제의 국경으로 군사상 요충지였으며, 청주시 및 주변 지역의 많은 산성 터가 대부분 이 무렵에 축성된 것으로 보여 당시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대변해 준다.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 처음으로 주(州) · 부(府) · 군(郡) · 현(縣)의 명칭이 개정되면서 지금 이름인 청주(淸州)로 고쳐졌다. 983년(성종 2) 전국에 12 목(牧)이 설치되면서 청주목으로 승격되었으며, 995년(성종 14) 12목이 폐지되고 10도(道), 12절도사(節度使) 체제로 개편될 때 전절군(全節軍)이라는 절도사가 파견되고 중원도(中原道)에 속하였다. 1011년(현종 2) 거란의 침입으로 왕이 나주로 피난했다가 개경으로 돌아갈 때 이곳에 들러 행궁(行宮)에서 연등회(燃燈會)를 베풀기도 하였다. 다음 해 절도사를 혁파하고 대신 안무사(安撫使)를 파견했으며, 1018년 전국에 8목을 설치할 때 다시 청주목이 되었다.

그 뒤 5도, 양계(兩界)의 지방제도가 정착되자 양광도(楊廣道)에 속했고, 연산군(燕山郡)[文義], 목주(木州)[목천(木川)], 진주(鎭州), 전의현(全義縣), 청천현(淸川縣), 도안현(道安縣), 청당현(靑塘縣), 연기현(燕岐縣), 회인현(懷仁縣) 등을 속현으로 거느렸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이 복주(福州)[안동(安東)]로 피난했다가 다음 해 이곳으로 옮겨 7개월간 머물렀는데, 이곳이 삼도(三道)의 요충으로서 곡식을 운반하기 쉽고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어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운천동에서 발견된 흥덕사(興德寺) 터는 1377년(우왕 3)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간행한 곳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청주목으로 존속했으며, 1395년(태조 4) 한양 천도와 동시에 양광도 일부가 경기도에 이속되고 나머지 지역이 충청도로 개칭되면서 충주목과 함께 그 계수관(界首官)이 되었다. 1449년(세종 31) 충청도관찰사로서 판목사(判牧事)를 겸하게 했다가 곧 폐지됐고, 세조(世祖: 1417~1468) 때에는 진(鎭)을 설치했으며 2개 , 10개 을 관할하였다. 1505년(연산군 11) 이곳 출신 사람이 환관 이공신(李公臣: ?1505)을 죽인 사건으로 청주목을 나누어 이웃 고을들에 분속시켰다가 중종(中宗: 14881544) 때 청주목으로 복구되었다.

1591년(선조 24) 해미에 있던 병사(兵使)를 청주로 옮겨 와 읍성 안에 머무르게 하고, 1594년 옥천에서 진을 옮겨 와 영장(營將)은 성 밖에, 우후(虞候)청주 상당산성(淸州 上黨山城)에, 찰방(察訪)은 율봉역(栗峰驛)에 각각 주재하게 하였다. 다음 해 원균(元均: 15401597)이 병사로 부임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왜장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15681623]에게 점령당했는데, 박춘무(朴春茂: 15441611)가 맨 먼저 복대동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조헌(趙憲: 15441592)영규(靈圭: ?~1592)가 이끄는 의병이 청주성을 수복하였다.

1656년(효종 7) 종 억이(億伊: ??)가 주인을 살해한 사건으로 인해 서원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67년(현종 8) 복구되었으며, 1680년(숙종 6)에도 생원 박상한(朴尙韓: ??)의 기우제 제문 가운데 반역의 뜻이 있다 하여 서원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89년(숙종 15) 복구되었다. 1728년(영조 4)에는 이인좌(李麟佐: 16951728)의 난으로 서원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740년(영조 16) 복구되었고, 1777년(정조 1)에는 역적 효임(孝任: ??)의 태생지라 하여 서원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812년(순조 12) 다시 복구되었다.

1826년(순조 26)에는 역적 박형서(朴亨瑞)의 태생지라 하여 서원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835년(헌종 1) 복구되었으며, 1862년(철종 13) 대역죄인 김순성(金順性: ?~1862)의 태생지라는 이유로 또다시 서원현으로 강등되었다. 1870년(고종 7) 청주목으로 복구되었고, 1895년(고종 32)에는 청주군(淸州郡)으로 개편되었다. 1896년 13도제의 실시로 충청북도에 속했으며, 1906년(광무 10) 경부선 철도가 개통하며 발전의 계기를 맞게 되었다. 1908년(융희 2)에는 충주에 있던 관찰부(觀察府)가 청주로 이전함에 따라 지금과 같은 지리적 범위가 정해지고 충청북도의 중심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1912년에는 일제에 의해 행정구역 통폐합이 이루어지면서 청주군과 문의군으로 분리되었고, 1914년에 문의군이 청주군에 통합되었다. 1931년 청주면이 읍으로 승격하였고, 1946년 청주읍이 청주부(淸州府)로 승격함에 따라 청주군의 나머지 지역이 청원군으로 개칭 · 분리되었다. 이때부터 청주가 중심에 위치하고 청원군이 이를 둘러싼 도넛 모양의 도시 구조 형태를 띠게 되었다.

1949년 일본식 지명이던 청주부가 청주시로 개칭되었다. 이후 행정동의 분동과 청원군 일부 지역이 청주시에 편입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1963년 1월 1일 청원군의 사주면(四州面) 일원이 청주시에 편입되었으며, 1983년 2월 15일에는 청원군 강서면 일원과 강내면 석소리, 남일면 방서리, 낭성면 산성리가 청주시에 편입되고, 용정동이 강서동으로 개칭되었다. 1987년 1월 1일 강내면 정봉리와 신촌리, 남이면 죽림리가 청주시에 편입되었고, 1989년 5월 1일에는 동부, 서부 2개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90년 8월 1일 남이면의 장성리, 남일면의 장암리 · 평촌리 · 지북리 · 운동리 · 월오리, 북일면의 주성리 · 주중리 · 외평리 · 외남리 · 외하리 · 오동리 · 정상리 · 정하리 · 정중리가 청주시에 편입되었다. 1994년 1월 1일 영운동과 용정동 일부가 금천동에, 장암동 일부가 평촌동, 5월 1일 산남동 일부가 수곡동에, 12월 30일에는 방서동과 운동동 일부가 용암동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동부출장소가 상당구, 서부출장소가 흥덕구로 각각 승격하였다.

2012년 6월 27일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에 반대해 오던 청원군 주민들이 찬성으로 돌아서며 통합이 확정되었다. 2012년 7월 1일 청원군 부용면의 8개 리[부강리, 행상리, 수산리, 문곡리, 등곡리, 노호리, 금호리, 갈산리]가 세종특별자치시에 편입되었고, 부용면 외천리를 남이면 부용외천리로 개칭, 편입하고 부용면을 폐지하였다. 2014년 7월 주민투표를 거쳐 통합 청주시가 출범되었다. 이에 청주의 옛 지명인 상당과 서원, 그리고 청원과 흥덕이 통합 청주시의 4개 구 지명으로 확정되었다. 나머지 옛 지명인 낭비성, 낭자곡, 낭성, 주성, 상당 등의 지명도 지역의 학교명이나 교가의 가사, 동리 명 등으로 남아 있다.

유물 · 유적

선사시대 유적으로 흥덕구 개신동과 상당구 명암동, 율양동에서 뗀석기가 출토되었으며, 상당구 내덕동과 율양동에는 선돌이 있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상당구 사천동, 용담동, 용암동에서는 마제석검, 석촉, 돌도끼 등이 나오고 있다. 흥덕구 봉명동 월명산(月明山: 119m)에서는 철기시대의 유물인 세형동검과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흥덕구에는 사적으로 지정된 청주 신봉동 고분군(淸州 新鳳洞 古墳群)[1987년 지정]이 있는데, 설립 연대는 5세기경으로 추정되며, 석실묘 [돌방무덤]와 토광묘 [널무덤]로 이루어져 있다. 묘실 바닥에는 냇자갈과 모래 점토를 다져서 기초를 마련하였고, 내부에서는 무기류, 마구류, 백제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산남동의 고분군에서도 삼국시대의 입큰토기 등이 나왔다.

산성으로는 상당구 산성동의 청주 상당산성[1970년 지정]과 청주 정북동 토성(淸州 井北洞 土城)[1999년 지정]이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고, 청주 부모산성(淸州 父母山城)[2002년 지정]은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외에도 당산토성(唐山土城), 와우산토성(臥牛山土城)이 있다.

주요 불교 유산으로 상당구 남문로2가의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淸州 龍頭寺址 鐵幢竿)[1962년 지정]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흥덕구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청주 운천동 출토 동종(淸州 雲泉洞 出土 銅鍾)[1993년 지정]과 상당구 용암동의 보살사(菩薩寺)에 있는 보살사 영산회 괘불탱(菩薩寺 靈山會 掛佛幀)[1997년 지정], 서원구 사직동의 청주 용화사 석조불상군(淸州 龍華寺 石造佛像群)[1989년 지정]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흥덕구 운천동의 청주 흥덕사지(淸州 興德寺址)[1986년 지정]는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청주 운천동 신라사적비(淸州 雲泉洞 新羅事蹟碑)[1983년 지정], 청주 보살사 극락보전(淸州 菩薩寺 極樂寶殿)[1980년 지정], 청주 보살사 오층석탑(淸州 菩薩寺 五層石塔)[1980년 지정], 청주 보살사 석조이불병립상(淸州 菩薩寺 石造二佛竝立像)[1976년 지정], 청주 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淸州 井下洞 磨崖毘盧遮那佛坐像)[1982년 지정], 청주 용암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淸州 龍岩寺 石造毘盧遮那佛坐像)[1976년 지정], 청주 모충동 석조비로자나불좌상(淸州 慕忠洞 石造毘盧遮那佛坐像)[2010년 지정], 청주 순치명 석조여래입상(淸州 順治銘 石造如來立像)[1985년 지정], 청주 서기사 석조약사여래좌상(淸州 瑞氣寺 石造藥師如來坐像)[1993년 지정], 청주 탑동 오층석탑(淸州 塔洞 五層石塔)[1976년 지정], 청주 목우사지 석조여래입상(淸州 牧牛寺址 石造如來立像)[2005년 지정]은 모두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유교 문화유산으로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상당구 대성동의 청주향교(淸州鄕校)[1977년 지정]와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된 용정동의 청주 신항서원(淸州 莘巷書院)[1984년 지정], 충청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청원구 주성동의 청주 주성강당(淸州 酒城講堂)[1997년 지정] 등이 있다.

주요 건축물로 상당구 남문로1가의 청주 망선루(淸州 望仙樓)[1982년 지정], 남문로2가의 청주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淸州 忠淸道兵馬節度使營門)[1976년 지정], 청주 청녕각(淸州 淸寧閣)[1982년 지정], 청주 성공회 성당(淸州 聖公會 聖堂)[1985년 지정], 흥덕구의 청주 신전동 고가(淸州 薪田洞 古家)[1985년 지정], 상당구의 청주 탑동 양관(淸州 塔洞 洋館)[1983년 지정] 등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수동의 청주 표충사(淸州 表忠祠)[1977년 지정]는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밖에 사당과 정자, 우물 등의 문화유산 중 흥덕구 수의동에 위치한 청주 충렬사(淸州 忠烈祠)[1977년 지정]와 청주 무농정(淸州 務農亭)[1990년 지정], 방서동에 있는 옛 우물인 청주 방정(淸州 方井)[1990년 지정]은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비석으로는 청주 송상현 묘소 및 신도비(淸州 宋象賢 墓所 및 神道碑)1984년 지정]와 청주 척화비(淸州 斥和碑)[1878년 지정]는 충청북도 기념물로, 청주 조헌 전장기적비(淸州 趙憲 戰場記蹟碑)[1984년 지정]와 청주 청주한씨 시조제단비(淸州 淸州韓氏 始祖祭壇碑)[1990년 지정]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명암동의 청주 곽예 묘소(淸州 郭預 墓所)[1977년 지정]는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외에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청원사(淸原祠)와 흥덕구 모충동에 있는 모충사(慕忠祠)가 유명하다. 청원사는 고려 후기의 명현(名賢)인 곽예(郭預: 1232~1286)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향하는 사당으로 청주 곽씨(淸州 郭氏) 문중에서 1974년에 건립했으며, 사당 아래에 곽예의 묘소와 신도비가 있다. 모충사는 동학군을 진압하다가 전사한 70여 장졸(將卒)의 영령을 봉안한 사당으로, 여러 차례 이건(移建)되다 1975년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다.

상당구 남문로1가에는 남석교(南石橋)[일명 돌다리 또는 남다리]라는 다리가 있었는데, 모두 쑥돌로 만들었으며, 길이 8.5m, 너비 3m 규모의 2층 교량으로 한국식 대청마루를 놓듯 돌의 널판을 긴네모꼴로 만들어 맞추어 놓았다고 한다. 예로부터 정월 대보름이면 주2 풍속이 있어, 사람들은 자신의 나이 수만큼 이 다리를 건너면 그해 다리 힘[각력(脚力)]이 좋아지는 주3를 얻는다고 믿었다. 또한 이 다리는 “드러나면 나라가 흥하고 묻히면 망한다”는 전설이 전해지던 다리였으나, 1932년 일본인에 의해 매몰되었다.

한편, 다양한 국가유산이 여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흥덕구 운천동 청주고인쇄박물관에는 보물로 지정된 범망경보살계본 및 수보살계법(梵網經菩薩戒本 및 受菩薩戒法)[2004년 지정], 금강반야바라밀경(2004)(金剛般若波羅蜜經(2004))[2004년 지정], 대방광불화엄경소권48,64,83(大方廣佛華嚴經疏卷四十八,六十四,八十三)[2004년 지정], 조선왕조의궤(2016-11)(朝鮮王朝儀軌(2016-11))[2016년 지정] 등이 소장되어 있다.

흥덕구 개신동에 있는 충북대학교 박물관에는 보물로 지정된 김길통 좌리공신교서(金吉通 佐理功臣敎書)[1981년 지정]와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청주 출토 순천김씨 의복 및 간찰(淸州 出土 順天金氏 衣服 및 簡札)[1979년 지정], 청원 구례손씨 묘 출토유물(淸原 求禮孫氏 墓 出土遺物)[1981년 지정], 청원 전 박장군 묘 출토유물(淸原 傳 朴將軍 墓 出土遺物)[1981년 지정], 중원 김위 묘 출토유물(中原 金緯 墓 出土遺物)[1981년 지정], 안동김씨 묘 출토의복(安東金氏 墓 出土衣服)[1987년 지정] 등이 소장되어 있다.

상당구 내덕동의 청주대학교 박물관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눌재강수유고 목판(訥齋江叟遺稿 木板)[1995년 지정]이 소장되어 있다. 또 흥덕구 운천동의 청주고인쇄박물관에는 보물로 지정된 분류두공부시(언해) 권21(分類杜工部詩(諺解) 卷二十一)[2004년 지정]과 성리대전서절요(性理大全書節要)[2004년 지정],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송상현 문적(宋象賢 文籍)[2003년 지정], 충청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청주 것대산 봉수(淸州 巨叱大山 烽燧)[1998년 지정] 등이 소장되어 있다.

이 외에도 수동에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금속활자장(金屬活字匠)[1996년 지정]이 있고, 흥덕구 강서1동의 청주 농악(淸州 農樂)[1992년 지정], 흥덕구 봉명2동의 배첩장(褙貼匠)[1999년 지정]은 충청북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 청주의 교육기관으로는 대성동의 청주향교가 있는데, 지역 유생들의 교육과 유교 윤리의 보급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570년(선조 3)에 설립되어 1660년(현종 1)에 사액된 신항서원은 1871년(고종 8) 서원 철폐령에 따라 폐쇄되었으나, 1957년 지역 유지들에 의해 용정동에 중건되었다. 분평동에 있는 구계서원(龜溪書院)은 원래 1613년(광해군 5) 괴산군 도안면 석곡리에 세워졌으나, 한국전쟁 이후 현재의 동고사(東皐祠) 자리로 이전하였다.

이 밖에도 숙종(肅宗: 16611720) 대에 설립된 월오동의 봉계서원(鳳溪書院), 내곡동의 송계서원(松溪書院), 운동동의 운곡서원(雲谷書院) 등이 있으며, 이들 서원은 지역의 유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또한 이이(李珥, 15361584)가 청주목사로 부임하였을 때 서원향약(西原鄕約)을 제정하고 이를 시행하게 함으로써, 그의 유훈이 청주 지역에 뿌리내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의 선교사 밀러(Miller, F. S.)가 건립한 현 청남초등학교의 전신인 광남학교(廣南學校)가 최초로 설립되었다. 그 뒤 1907년(광무 11) 청주보통학교가 개교했는데, 1911년 청주공립보통학교로 개칭되었으며 현 주성초등학교의 전신이 된다. 중등 교육기관으로는 현 청주농업고등학교의 전신인 청주공립농업학교가 1911년 개교하였다.

2025년 3월 1일 기준 청주시의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122개, 초등학교 99개, 중학교 49개, 고등학교 38개, 대학교 8개가 있다.

문화공간은 박물관 10개, 공공도서관 19개, 공연장 13개, 미술관 9개가 있다. 국립청주박물관은 청주시가 관리하는 박물관은 아니지만, 청주시의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충청북도 지역의 문화유산을 조사 · 연구 · 전시하고자 1987년 10월 30일 개관하였다. 이 밖에 충청북도 지역의 예술 · 문화 활동의 중심체로서 충북문화예술인회관이 있고, 시민과 학생의 독서 활동을 위해 청주시립도서관과 충청북도교육도서관 등이 있으며, 시민 교양 강좌와 문화 활동을 주관하는 청주문화원과 청주아트홀이 있다.

또 음악 활동을 위한 청주시립교향악단, 청주시립합창단, 청주시립국악단이 있다. 한편, 한국국악협회 충청북도지회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단오에 망월제(望月祭)와 단오제(端午祭)를 개최해 지역 전통문화의 발전과 보존에 기여하고 있다.

민속 · 설화 · 민요

청주시에서 전하는 민속놀이로는 농악, 씨름, 그네뛰기, 윷놀이, 연날리기, 자치기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농악은 풀매기, 벼 심기 등 힘든 일을 할 때 수고를 덜고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거행되었지만, 정초와 단오, 백중, 추석 등의 명절날에는 온 주민이 함께 즐기는 오락적 기능도 담당하였다. 특히 정초의 경우에는 오락일 뿐만 아니라 신앙적 행사의 구실도 하여,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지신밟기 등의 액막이굿과 우물을 도는 샘굿을 하였다. 농악대의 구성은 대개 상쇠를 비롯해 징, 장구, 북, 소고 등을 치는 사람, 농기(農旗)영기(令旗) 1쌍, 무동, 대포수 등 흥을 돋우는 무리 등 10~20명으로 구성되었고, 가락은 주로 자진모리를 썼다.

씨름은 단오절과 상원일(上元日)에도 거행되었지만 백중일(百中日)에 가장 성대하게 벌어졌다. 백중은 머슴들의 명절이며 씨름이야말로 이들의 힘을 과시할 수 있는 최상의 기회였다. 경기는 백사장에 적당한 넓이의 원형 씨름판을 만들어 놓고 거행했는데, 큰 씨름판이 벌어지면 남녀노소 함께 술과 음식을 장만해 구경하며 하루를 즐겼다.

자치기는 어린이 놀이로서 적당한 길이의 긴 막대기와 짧은 막대기 두 개를 가지고 논다. 놀이 방법은 둘 또는 그 이상의 어린이들이 편을 갈라 땅바닥에 원을 그려 놓고 긴 막대기로 짧은 막대기를 쳐서 날려 보내는데, 이것을 상대방이 잡으면 편을 바꾸고 못 잡으면 날아가 떨어진 막대기와 원까지의 길이를 재어서 자수 내기를 한다. 이 밖에도 제기차기, 고누, 장치기 등의 놀이가 있다.

청주 지역의 동제는 다른 시군에 비해 빈약한 편이다. 일찍이 행정 도읍의 기능을 가지고 상업도시로 발전한 것이 중요한 원인인 것 같다. 산간지방의 마을에서는 동제를 지냈던 곳이 다수 있었으나 근래에는 거의 자취를 감춘 형편이다. 최근 청주시에 편입된 월오동과 운동동 등 동남부의 마을에서만 아직도 동제가 이어지고 있다.

월오동의 장승제는 남녀 장승을 모시는데, 장승은 2년에 한 번씩 정월 대보름에 세운다. 대보름 아침에 제를 올리며, 동네 뒷산인 선도산의 입석 2기를 선도할아버지와 선도할머니라 부르고 함께 모신다. 운동동은 돌할아버지와 돌할머니라고 칭하는 돌미륵을 모시는데, 옛날에 마을 사람들이 주4을 받고 흙 속에 묻혀 있던 것을 파냈다고 한다. 정월 14일 밤에 제물을 차리고 이장 부인이 제주가 되어 제사를 지내며, 부녀자들만이 참여하는 특이한 동제이다.

그 밖에 동민이 모두 참여하는 동제의 형태는 찾아볼 수 없으나 개인적인 치성이나 고사 행위가 많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시내 동편의 우암산은 민간신앙의 온상으로 아직도 많은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산업 · 교통

청주시는 충청북도 12개 시군 가운데 경제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난 지역이다. 2014년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으로, 기존 1위였던 청주시와 2위 청원군의 경제력이 하나로 결집되면서 경제력 집중 현상이 더욱 심화되었다.

청주시의 지역내총생산은 충청북도 전체의 약 50%를 차지하며, 광역시급에 준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도내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지목별 토지 이용 현황을 보면, 총면적 941㎢ 가운데 밭이 87.7㎢, 논이 127.3㎢, 임야가 468㎢, 대지가 57.2㎢, 공장용지가 24.6㎢, 도로가 50.4㎢, 기타가 125.8㎢를 차지하고 있다.

본래 청주는 농업 중심의 전형적인 소비 도시였으나, 1960년대에 들어 교통이 발달하고 도시인구가 증가하면서 점차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정부의 국가경제개발계획과 국토개발계획 추진 과정에서 청주는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었으나, 1970년대 들어 공업화가 시작되면서 제조업의 비중이 점차 확대되었다. 1980년대에는 수도권 과밀 억제 정책과 중부고속도로 개통이 맞물리면서 공업화가 급속히 진행되었고, 그 영향은 청주시를 넘어 진천군, 음성군 등 충청북도 중부 지역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19791986년에 청주공단 제3단지 181만 1570㎡[54만 8000평], 19871989년에 제4단지 123만 6363㎡[37만 4000평]를 각각 조성, 분양하여 LG그룹이 LG반도체를 청주산업단지로 대거 이전하는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 공장들이 입주하였다. 1985~1995년 동안 사업체 수 및 근로자 수 등 연평균 증가율이 전국 평균을 크게 상회하면서 청주시 제조업 연간 생산액이 1985년 1조 원을 돌파하였고, 1994년에는 4조 원을 넘어섰다.

2022년 기준 청주시의 산업단지는 총 12개로 집계되며, 대표적으로 청주산업단지와 오창과학산업단지, 오송생명과학단지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청주산업단지는 청주시의 공업화를 선도한 역사적인 곳이다. 1969년 1단지 조성을 시작으로 1989년 4단지가 준공되기까지 20여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조성되었다. 흥덕구[송정동, 향정동, 복대동, 지동동, 비하동, 송절동, 봉명동] 일원 409만 8000㎡[124만 평]의 부지에 섬유, 전기 · 전자, 식품, 석유화학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2024년 기준 717여 개의 기업이 있으며, 고용 인원은 8,000여 명에 달한다. 업종별로 보면 비제조업, 전기 · 전자, 기계, 석유화학 순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생산액은 연간 15조 원대, 수출 금액은 64억 달러에 이른다.

청주시의 산업구조는 3차산업의 비중이 가장 크고,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2차산업의 비중도 높은 편이나 농림어업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최근 주목할 만한 변화는 지식기반산업화, 기존 산업의 고부가가치화 등 산업구조의 고도화가 지속되고 있으며, 오창과학산업단지와 오송생명과학단지, 청주테크노폴리스를 기반으로 첨단기술산업 및 보건 의료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청주시의 농업은 1970년대 산업화도시화, 그리고 1990년대 자유무역협정[FTA] 등 대내외 농업 환경의 변화로 인해 전체 경제 부문에서의 비중이 크게 감소하였다. 1962년에는 농업인구 비율이 20%에 육박했으나 2000년대 들어 2%대로 하락하였고, 2014년 청원군과의 통합으로 일시적으로 5%대로 소폭 상승하였다. 그러나 이는 청원군의 농촌 지역을 흡수한 데 따른 결과일 뿐, 이후에도 감소 추세는 이어져 2022년 기준 농업인구 비율은 4.8%에 그치고 있다. 경지면적 역시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며, 통합 당시 청원 지역의 편입으로 일시적인 증가가 있었으나, 전체적으로는 감소세가 계속되고 있다.

청주시의 전통시장으로는 상당구에 4개소[서문시장, 육거리종합시장, 성안길, 중앙시장], 서원구에 4개소[사창시장, 사직시장, 두꺼비시장, 원마루시장], 흥덕구에 5개소[가경터미널시장, 복대가경시장, 직지시장, 복대시장, 하복대시장], 청원구에 4개소[북부시장, 밤고개자연시장, 오창시장, 내수전통시장]가 있다.

청주시의 대표적인 상권 지역으로 상당구의 성안길이 있다. 과거 청주읍성(淸州邑城) 안의 남문과 북문을 가르는 중심축으로 청주읍성 안에 있는 큰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로부터 행정과 상업 기능이 밀집되어 있던 중심지로 청주의 번화가이다. 2012년 청주 지웰시티에 현대백화점이 개점하고 근방이 활성화되면서 침체 현상을 겪기도 하지만, 청주 시민에게 성안길은 ‘청주의 시내’이자 젊음의 활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청주시의 교통은 도로철도 모두에서 광역 접근성이 뛰어난 편이다. 도로교통 측면에서는 국도 17호선충청북도 진천군대전광역시를, 국도 25호선이 충청북도 보은군청주시를, 국도 36호선이 충청북도 증평군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을 연결하고 있으며, 중부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가 시의 서부를 관통하고 있다. 철도는 충북선, 경부고속철도, 호남고속철도가 지나가며, 주요 역으로 오송역, 청주역, 오근장역, 청주공항역이 있다.

그중 오송역은 고속철도와 일반철도 모두가 지나는 전국적 철도 요충지로, 2008년 착공되어 2010년 완공되었다. 2015년 호남고속철도의 개통과 더불어 국토 중심 철도역으로 성장하였으며, 세종특별자치시 출범과 정부세종청사의 개청 등으로 인해 이용객이 크게 증가하였다. 다만, 오송역은 청주시 중심 시가지에서 약 15㎞ 떨어진 데다 서부 지역에 치우쳐 있어, 청주 시민과 관광객에게는 철도 접근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공항은 청원구 내수읍에 청주국제공항이 있다. 1978년 공군 청주기지로 처음 건설되었으며, 1984년 국제적인 허브공항으로 건설한다는 계획이 발표된 적이 있었으나,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떨어져 결국 인천국제공항에 그 역할을 넘겨주었다. 1997년 여객터미널을 개장하면서 지금의 청주국제공항이 되었으며, 2024년 국내 국제선 항공편 여행객 순위 4위를 차지하는 만큼 중부권 거점공항으로서 국제 교류의 축을 담당하고 있다.

관광

청주시의 관광지로는 명암지구, 우암산지구, 청주중앙공원과 상당공원(上黨公園), 청남대를 들 수 있다.

명암지구에는 명암지, 국립청주박물관과 청주랜드우암어린이회관, 명암약수터, 청주 상당산성 등이 있다. 명암지는 용담동에 있는 저수지로 청원농지개량조합에서 관리하고 있으나 시가지 개발로 인해 농업용수 공급 기능은 쇠퇴하였고, 낚시나 보트 놀이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유원지로 이용되고 있다. 인근에 자리한 국립청주박물관에서는 청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문화재와 역사 자료를 관람할 수 있으며, 청주랜드우암어린이회관은 어린이를 위한 각종 놀이시설을 갖추고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상당산 아래에 위치한 명암약수터는 약수 음용지로서는 부적합하지만,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호텔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많은 행락객이 찾는 관광 명소로 자리하고 있다. 산성리의 청주 상당산성은 사적으로 지정된 유서 깊은 곳으로, 최근에 산성을 복원하고 주변에 향토 음식 전문의 한옥촌을 건립해 관광지함으로써 많은 시민이 찾고 있다.

우암산지구는 시 동쪽의 우암산을 중심으로 조성된 지역으로, 산을 둘러싼 순환도로와 여러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어 많은 사람이 등산과 약수터 이용을 위해 찾는 대표적인 휴식처이다. 산 정상에는 토성 유적이 남아 있어 역사적 가치도 지니고 있다. 수동의 우암산 입구 3·1공원에는 3·1운동 유공자 동상이 서 있다. 그뿐 아니라 우암산은 많은 사찰과 암자 등이 있는 불교 유적의 보고이며, 청주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훌륭한 전망대가 되고 있다.

청주중앙공원은 시내 한가운데에 자리한 도시공원으로서 이곳은 과거 관찰사가 있었던 감영이었다. 공원 안에는 청주 압각수(淸州 鴨脚樹)[충청북도 자연유산, 2025년 지정], 청주 청녕각, 한봉수 의사비 등의 문화유산이 있는 시민들의 휴식처이다. 부근에는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청주 망선루 등이 있다. 상당공원은 중심부의 상당로 도로변에 자리한 조그마한 공원으로 청주중앙공원과 함께 훌륭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운천동의 청주 흥덕사지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간행한 곳으로, 청주고인쇄박물관이 건립되어 있어 가 볼 만하다.

청남대(靑南臺)는 전두환 정부 때부터 역대 대통령이 이용하던 전용 별장으로,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민간 개방을 선언하고 소유권을 충청북도에 이관하면서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그동안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으며 대통령 기념관과 하늘정원, 호반산책로 등이 있다.

행정구

상당구

청주시 동부에 있는 구이다. 동쪽은 충청북도 보은군, 서쪽은 서원구, 북쪽은 청원구, 남쪽은 대청호를 사이에 두고 대전광역시와 접한다. 역사적으로 시의 중심부였던 청주 상당산성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04.44㎢로, 청주시 전체 면적의 약 43%를 차지하며, 인구는 19만 7952명이다. 상당구청은 남일면 효촌리에 있다.

1949년 8월 청주부가 시로 승격한 뒤 시청 및 도청 소재지로서 중심지 역할을 해 왔으며, 1989년 7월 동부출장소가 설치되어 17개 동을 관할하였다. 1995년 1월 구제(區制)가 시행되면서 상당구로 승격하였다. 2014년 7월 1일 청주시와 청원군이 통합하면서 우암동, 내덕1동, 내덕2동, 율량 · 사천동, 오근장동을 신설되는 청원구로 이관하고, 청원군의 낭성면, 미원면, 가덕면, 남일면, 문의면을 편입하여 5개 면, 8개 동을 관할하게 되었다. 구청은 본래 우암동에 있었으나, 통합 청주시 출범 이후 관할구역이 변경되면서 2018년 남일면 효촌리로 이전하였다.

동부에 상당산, 선도산, 선두산, 관봉, 태봉 등의 산이 있고, 상당산에서 분기한 우암산이 남서 방향으로 뻗어 시가지 동쪽에서 급사면을 이룬다. 또 상당산에서 발원한 금천이 명암계곡에서 명암지를 이루면서 서쪽으로 흘러서 석교동 부근에서 무심천에 흘러든다. 시가지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무심천 유역의 방서리에는 대머리평야가 있다. 용담동의 명암저수지는 일제강점기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만들어진 저수지로, 1918년에 착공해 1921년에 준공되었으며, 지금은 종합 유원지로 활용되고 있다.

청주시의 구도심 지역으로, 충청북도청과 청주시청, 한국은행 충북본부, 육거리종합시장, 성안길 등이 자리해 지역사회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중심을 이루는 곳이 중앙동으로, 이름 그대로 청주시 중심부에 자리해 2028년 완공을 목표로 옛 청주시청 자리에 신청사를 짓고 있다. 흔히 성안길로 불리는 북문로2가를 중심으로 번화가가 형성되어 있다.

탑동, 대성동, 서운동, 남문로1가, 서문동 등은 섬유 · 의복 · 피혁공업, 제재 · 목재품 · 가구제조업, 종이 · 종이제품 · 인쇄출판업, 기타 제조업 등 네 개 부문에 특화되어 있다. 석교동과 수동은 제재 · 목재품 · 가구제조업과 기타 제조업 부문이, 금천동은 음식료품 · 담배 제조업, 1차 금속 제조업, 기타 제조업 등 세 개 부문이 공통적으로 특화되어 있다.

영운동, 내덕동은 섬유 · 의복 · 피혁공업, 비금속광물 제품 제조업이 공통적으로 특화되어 있고, 용암동과 용정동, 방서동은 섬유 · 의복 · 피혁공업, 고무 · 플라스틱 제조업, 비금속광물 제조업이 특화되어 있다. 영동, 북문로2가, 북문로3가, 우암동은 음식료품, 담배 제조업, 목재 · 제재 · 가구제조업, 종이 · 종이제조업 · 인쇄출판업이 공통적으로 특화되어 있고, 용암동과 명암동, 삼성동은 기타의 제조업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명암지구에는 명암저수지, 국립청주박물관, 청주랜드우암어린이회관, 호텔 등이 있고 가까이 유서 깊은 청주 상당산성이 있어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처가 되고 있다.

시내버스로 연결되는 경부선 조치원역이 가까이 있고 충북선 오근장역과 경부고속도로중부고속도로의 승객 터미널이 있으며 시가의 중심 지역을 중심으로 충주 방면, 대전 방면, 보은 방면 등의 도로가 정비되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산으로 산성동에는 청주 상당산성청주 조헌 전장기적비가 있고, 남문로2가에는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남문로1가에는 청주 망선루가 있다. 북문로1가에는 청주 청녕각, 북문로3가에는 청주 척화비가 있으며, 용암동에는 청주 보살사 석조이불병립상청주 보살사 극락보전, 청주 보살사 오층석탑이 있다. 우암동에는 청주 용암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수동에는 청주 성공회 성당청주 표충사가 있고, 탑동에는 청주 탑동 양관, 용정동에는 청주 순치명 석조여래입상청주 신항서원, 방서동에는 청주 방정, 청주 무농정이 있다. 또 명암동에는 청주 곽예 묘소, 운동동에는 청주한씨 시조제단비 등이 있다.

흥덕구

청주시 서부에 있는 구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84.41㎢이고, 인구는 28만 5838명으로 청주시에서 가장 많다. 흥덕구청은 강내면 사인리에 있다.

1910년(융희 4) 충청북도 도청 소재지가 되었다. 1948년 청주읍이 시로 승격되었으며 1989년 서부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95년 청주시의 분구로 흥덕구가 설치되었다. 구의 명칭은 『직지심체요절』이 발간된 사찰 흥덕사에서 따왔다. 행정구역은 1개 읍[오송읍], 2개 면[강내면, 옥산면], 8개 행정동[운천 · 신봉동, 복대1동, 복대2동, 가경동, 봉명1동, 봉명2· 송정동, 강서1동, 강서2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부는 무심천을 경계로 상당구와 접하고, 서부는 부모산과 팔봉산, 망일산, 국사봉, 봉무산, 작두산, 노고봉 등의 잔구성 산지가 산재한다. 무심천이 흐르는 수곡동과 분평동 일대에는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있으며, 하류의 운천동 일대에도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무심천 부근에도 사직산(社稷山: 87.4m), 구룡산(九龍山: 163m) 등이 있으나 대부분 지역이 시가지로 변모하였다.

한국고속철도[KTX] 오송역, 청주IC, 서청주IC, 청주고속버스터미널, 청주시외버스터미널 등이 자리해 교통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청주산업단지, 오송생명과학단지, 옥산일반산업단지, 청주테크노폴리스 등의 산업단지들이 있어 청주의 경제 중심지이기도 하다.

읍 · 면 · 동별 개요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우선 오송읍은 청주의 서쪽 관문으로 세종특별자치시가 인접해 있으며 KTX 오송역과 오송생명과학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모충동은 음식료품 · 담배제조업, 제1차 금속제조업, 기타 제조업이 특화되어 있고 가경동과 복대동은 섬유 · 의복 · 피혁공업, 비금속광물 제품의 제조업이 특화되어 있다. 사천동과 산남동, 미평동, 분평동, 수곡동은 제재 · 목제품, 가구제조업, 비금속광물 제조업이 특화되어 있다.

봉명동과 송정동은 섬유 · 의복 · 피혁공업, 화학 · 섬유 · 석탄 · 고무 · 플라스틱 제조업, 금속제품 · 기계장비 제조업이 특화되어 있고, 사직2동과 사창동은 섬유 · 의복 · 피혁공업, 화학 · 섬유 · 석탄 · 고무 · 플라스틱 제조업, 금속제품 · 기계장비 제조업이 공통적으로 특화되어 있다. 강서2동은 기타의 공업이 특화되어 있다.

문화유산으로 개신동의 충북대학교 박물관김길통 좌리공신교서, 청원 구례손씨 묘 출토유물청원 전 박장군 묘 출토유물 등이 있다. 또한 개신동에 청주 출토 순천김씨 의복 및 간찰이 있고, 신봉동에는 청주 신본동 고분군, 운천동에는 청주 흥덕사지, 청주 운천동 신라사적비가 있다. 사직동에는 청주 용화사 석조불상군, 신성동에는 청주 신전동 고가, 수의동에는 청주 송상현 묘소 및 신도비 등이 있다.

서원구

청주시 서남부에 있는 구이다. 2014년 청주시와 청원군이 통합되며 신설된 구로, 청주의 옛 이름인 서원경(西原京)에서 따온 이름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22.63㎢이고, 인구는 18만 1621명이다. 서원구청은 사직동에 있다. 원래 흥덕구였던 사직1동, 사직2동, 사창동, 모충동, 수곡1동, 수곡2동, 산남동, 분평동, 성화 · 개신 · 죽림동과 남이면, 현도면 등 9개 행정동, 2개 면을 관할한다.

통합 청주시의 출범에 따라 신설된 행정구역이기 때문에 기존 지역과 신흥 개발 지역의 특징이 혼재하여 나타나는 도농 통합형 구이다. 청주지방법원, 청주지방검찰청이 있어 청주시의 사법행정 기능이 집중된 곳이자, 대학교 5개 [충북대학교, 청주교육대학교, 서원대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가톨릭꽃동네대학교]와 충청북도교육청이 자리한 교육 기능 중심지이다.

남이면은 대전광역시세종특별자치시와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로서, 경부고속도로중부고속도로가 갈라지는 지점에 남이분기점, 서산영덕고속도로와 만나는 지점에 청주분기점이 있다.

사직1동과 사직2동은 청주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무심천을 경계로 동쪽은 서문동, 서쪽은 사창동, 남쪽은 모충동, 북쪽은 운천동과 접한다. 1963년 도시개발계획 당시, 이 일대에 사직단이 있었던 것에 근거해 ‘사직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현재 이 지역에는 청주예술의전당, 청주종합경기장,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등 시민을 위한 체육 및 문화예술 시설이 고루 갖추어져 있다. 사창동은 조선시대에 이곳에 설치되었던 사창(社倉)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본래 청원군에 속했으나 청주시로 편입되었으며, 지금은 금융기관, 병원, 상가 등이 밀집한 지역으로, 신흥 주거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산남동은 구룡산 남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청주지방법원, 청주지방검찰청, 청주교육지원청 청사가 있어 법조 · 교육 · 행정 타운의 역할을 하며, 산남로를 따라 상점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명소로 두꺼비생태공원이 있다. 분평동과 성화 · 개신 · 죽림동은 도시와 농촌이 어우러진 도농 복합형 지역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곳이다.

청원구

청주의 북부에 위치한 구이다. 2014년 청원군이 통합되면서 신설된 구로, 기존 상당구에 속하였던 우암동, 내덕1동, 내덕2동, 율량 · 사천동, 오근장동과 청원군 중 내수읍, 오창읍, 북이면을 관할한다. 과거 청원군의 지명을 그대로 계승하였으며,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215㎢이고, 인구는 18만 9126명이다. 청원구청은 우암동에 있다.

청주국제공항과 오창나들목, 증평나들목이 자리해 육상과 항공 교통편을 아우르는 교통 결집 지역이다. 또한 초정약수청주 정북동 토성, 전국에서 최초로 지정된 문화산업단지가 있는 역사와 문화 중심 지역이자, 2차전지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오창과학산업단지가 있는 첨단산업 지역이다.

내수읍에는 청주국제공항이 있고, 충북선 철도가 지나간다. 중앙을 청주-충주 간 국도가 관통하며, 서부를 청주-진천 간 지방도, 동부를 미원면에 연결하는 지방도가 통과하여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동쪽에는 초정약수로 유명한 초정리가 있다. 오창읍은 1995년 오창과학산업단지가 조성된 이후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2007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미호천을 낀 너른 곡창지대인 미호평야가 있어 예로부터 양질의 쌀이 생산되는 지역이다.

우암동은 우암산을 배경으로 조성된 전형적인 주거 밀집 지역이 자리한다. 상당로, 향군로, 흥덕로가 교차하여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내덕동에는 문화공간이 많은데, 그중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은 2019년 5월 개관하였으며,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열리는 청주도시첨단문화산업단지도 있다.

오근장동은 오근장이라는 우시장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미호강과 무심천의 합류점인 까치내가 이곳에 자리하며, 청주 정북동 토성, 청주 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 청주 주성강당 등의 문화유산이 있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단행본

『한국지리지: 충청북도』(국토지리정보원·충청북도, 진한엠앤비, 2016)
『한국지명유래집: 충청편』(국토지리정보원, 진한엠앤비, 2015)

인터넷 자료

주석
주1

골짜기 밑에 발달한 평야. 골짜기 안을 흐르는 하천의 침식 또는 퇴적 작용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우리말샘

주2

정월 보름날 밤에 다리를 밟는 풍속. 이날 다리를 밟으면 일 년간 다릿병을 앓지 아니하며, 열두 다리를 건너면 일 년 열두 달 동안의 액을 면한다고 한다. 우리말샘

주3

신기한 효과나 효험이 있음. 또는 그 효과나 효험. 우리말샘

주4

죽은 사람이나 신령 따위가 꿈에 나타남. 또는 그 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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