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군 ()

증평군청
증평군청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충청북도 중앙부에 위치한 군.
정의
충청북도 중앙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괴산군, 서쪽은 청주시, 북쪽은 진천군, 음성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7°32'∼127°40', 북위 36°41'∼36°51'에 위치하며, 면적은 81.83㎢, 인구는 3만 6671명이다.(2015년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개 면, 109개 행정리(27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창동리에 위치하고 있다.

자연환경

증평군은 차령산맥인 음성군 부용산에서 분기한 노령산맥의 두타산과 좌구산, 삼보산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북서부는 고도 200∼300m의 구릉지대이고, 남부는 200m 이하의 일부 구릉지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넓은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사리면 보광산에서 발원한 보강천이 도안면의 도암리에 이르러 북쪽에서 흘러오는 전당천, 남쪽에서 흘러오는 청안천과 합류하고, 증평리에 이르러 남쪽의 삼거천과 만나 계속 서쪽으로 흘러 청원구 북이면, 진천군 초평면과 경계 이룬다.

연평균 기온은 10.5℃이며, 1월 평균기온 -3.5℃, 8월 평균기온 24.1℃로 연교차가 30℃에 이른다. 강수량은 편차가 심해 적을 때는 759㎜, 많을 때는 1604㎜를 기록한 적도 있으나, 보통 1400㎜ 안팎이다.

역사

증평군은 고구려에 의해 475년(장수왕 63) 금물노군(今勿奴郡) 도서현(道西縣)으로 설치되었으며, 통일신라 때인 757년(경덕왕 16) 흑양군(黑壤郡) 도서현(都西縣)에 속하였다.

고려시대에는 940년(태조 23) 흑양군(黑壤郡)에서 청주목(淸州牧)으로 이관되면서 도안현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1018년(현종 9) 도안현과 청당현으로 분리, 청주목 관할이 되었다. 도안현은 현재 도안면을, 청당현은 현재 증평읍과 청안면을 일컫는다.

조선시대에는 1405년(태종 5) 도안현과 청당현이 합병되어 청안현(淸安縣)이라 부르게 되었고, 1895년(고종 32) 청안군으로 승격되었다. 현재의 증평읍 지역은 청안읍 서쪽 가까이에 위치하여 근서면(近西面)이라 하였으며, 시화, 단암, 선원, 반탄 등의 27개 리를 관할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증평읍은 청안군 남면의 26개 리와 청안군 북면의 2개 리, 청안군 읍내면 회룡리, 청주군 산외2면의 초중리 일부와 월경, 청유의 2개 리를 병합하였다. 이와 함께 괴산군에 편입되어 증천과 장평의 이름을 따 증평면이라 하였고, 증평, 미암, 송산, 연탄, 사곡, 용강, 남하, 죽리, 덕상, 남차, 율리 등 11개 리로 개편하였다.

한편 도안면은 1910년 면의 행정구역이 법정지위를 갖게 됨에 따라 청안군 북면의 33개 리를 관할하였으며, 1914년 서면의 진암 일부와 음성군 원서면의 눌문리 일부를 병합하여 화성, 도당, 석곡, 광덕, 송정, 노암, 연총 등 7개 리로 개편하였다. 또한 괴산군에 편입되어 옛 도안현의 이름을 따 도안면이 되었다.

해방 후인 1949년 8월 13일 증평면이 증평읍으로 승격하였으며, 1973년 7월 1일 청원군 북이면 초중리 등을 편입시켜 15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90년 12월 31일에는 증평읍과 도안면 관할구역에 충청북도 증평출장소가 설치되었다. 이에 따라 증평읍 지역은 증천지소와 장평지소가, 도안면 지역은 도안지소가 설치되어 3개 지소를 증평출장소가 관할하게 되었다. 이후 2003년 8월 30일 증평출장소가 증평군으로 승격되면서, 증천지소와 장평지소를 합병해 증평읍으로, 도안지소를 도안면으로 개칭하게 되었다.

유물·유적

증평군의 유형문화재로는 증평 광덕사 석조여래입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 남하리사지 삼층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98년 지정), 남하리사지 마애불상군(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98년 지정), 미암리 석조관음보살입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98년 지정), 남하리 석조보살입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2001년 지정) 등이 있다.

유교유적으로는 증평읍 대동리의 단군전, 남차리의 청연사·구계서원, 죽리의 평해군 묘, 남하리의 안동김씨 사당, 도안면 노암리의 기성전, 도당리의 정후사가 있다.

불교유적으로는 증평읍 율리 밤티마을 절골에 있는 옛 절터 구석사, 남하2리의 미륵석불입상, 남하3리의 마애삼존석불·삼층석탑, 송산리의 미암리 관세음보살입상, 도안면 광덕리의 여래석불입상 등이 있다.

정각으로는 증평읍 도안면 화성리의 연종록 부부 정효각·곡산연문 쌍효각, 용강리의 장용기부부 정효각·곡산연씨 열녀각, 남하리 김환극 부부 효비각, 도안면 광덕리의 김창익 효자각, 화성리의 곡산연문 효열각, 강릉유문 쌍열각 등이 있다.

광덕사 석조여래입상은 지름 1.84m, 불상 높이 약 4m로, 높이 83㎝의 둥근 연화대좌(蓮花臺座) 위에 서 있어 전체 높이는 약 4.8m이다. 소발(素髮)의 머리에 육계(肉髻)가 있고, 미간에는 백호(白毫)가 표현돼 있다. 넓직한 얼굴에 코가 크고, 두 귀는 긴 편이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다. 불신(佛身)은 얼굴에 비해 짧은 편이고, 통견(通肩)은 법의(法衣) 양팔에 걸쳐 있으며, 배 아래로 활 모양의 주름이 조각돼 있다. 불두(佛頭)는 턱과 귀로 이어지는 균열이 발생해 시멘트로 보강되어 있고, 이마 부분에 철띠가 둘러져 있다. 10세기 전후 신라 말·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하리 사지에는 자연 암반 위에 기단석이 생략된 채 한 면의 길이 1.8m, 높이 35㎝의 네모난 대석(臺石)이 놓인 1.65m 높이의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대석의 윗면이나 옆면은 물론 탑신(搭身)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등의 아무런 조식이 없어 단조로움을 준다. 1층 탑신의 한 모서리 위에는 돌을 쪼아낸 흔적이 남아 있고, 1층 탑신에 비해 2층 탑신의 높이가 급격히 낮아진다. 탑신과 옥개석(屋蓋石)은 각각 별도의 돌로 조성되었는데, 2층 탑신만은 1층 옥개석과 하나의 돌로 되어 있어 고려시대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옥개석 아래 옥개 받침은 모두 3단으로 되어 있으나 각 층의 윗면에는 탑신 받침이 없다. 3층 옥개석 위의 상륜부에는 노반(露盤)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데, 지름 9.5㎝의 찰주공(擦柱孔)이 3층 탑신까지 관통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흉년이 드는 경우, 주민들이 노반의 방향을 다르게 놓아 비가 오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남하리 삼층석탑은 1994년 충청전문대 박물관의 지표조사 결과, 고려시대 인근 염곡소(念谷所)에서 많은 불을 다루면서 청안 남쪽의 높아지는 화기(火氣)를 눌러, 마을의 화재와 주민들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산천비보사상(山川裨補思想)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밝혀졌다.

증평읍 남하3리 염실마을 뒤편 남대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남하리 사지는 1954년까지 암자(庵子)가 있었으나 현재는 삼층석탑과, 석탑에서 20m가량 떨어진 곳에 마애불상군(磨崖佛像群)이 남아 있다. 이 마애불상군은 충북 지방에서 그리 흔치 않은 삼존불(三尊佛)과 반가사유상(半跏思惟傷)을 비롯해 여래입상(如來立像)을 한 곳에 모아 놓은 불상군이다.

화강암벽 세 면에 모두 다섯 구(軀)의 불상이 새겨져 있는데, 앞면에 본존불(本尊佛)과 좌우 협시불(脇侍佛)의 삼존불을 두고, 왼쪽에 여래입상이, 오른쪽에 반가사유상이 배치돼 있다.

마애삼존불의 본존불이 취하고 있는 통인(通印)의 수인(手印)은 6세기 후반 조성된 근교의 청원구 내수읍 비중리 일광삼존석불(一光三尊石佛)이나 비중리 석조여래입상의 수인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삼존불의 중앙 본존불 아래 바닥에는 사각형의 우물을 파 놓았는데, 그 주위에 각종 불기(佛器)가 놓여 있어, 현재도 예배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존불의 왼쪽에 있는 여래입상은 남대산으로 오르는 길에 인접해 있고, 하단부는 땅 속에 묻혀 있다. 이곳 다섯 구의 마애불상은 모두 원만자비형(圓滿慈悲形)의 상호(相好)와 당당한 체구를 보여주고 있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생략되어 있어, 거의 같은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증평읍 송산리 미륵사 옆에 위치하고 있는 미암리사지 석조관음보살입상은 1940년 이 보살입상 옆에 암자가 세워졌으나 1950년 소실된 후, 1957년부터 마을에서 보호각을 짓고 수호신으로 불공을 드려오고 있다. 이로 인해 ‘미륵댕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

높이 2.6m의 이 보살입상은 머리에 화불(化佛)을 양각한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눈썹 사이에 백호(白毫)가 양각돼 있고, 두 발이 땅 밑에 묻혀 있으며, 시멘트로 목 부분을 보강해 놓았으나 삼도(三道)가 선명하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어깨에 걸쳐 옆으로 내려졌고, 오른손에는 연경(蓮莖) 1지(一枝)가 조각돼 있다.

보관의 화불이나 옷 무늬, 상호 등의 조각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증평 지역에 남아 있는 다른 불상들과의 양식적 관련성과 신앙형태에 대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교육·문화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4개교, 중학교 3개교, 고등학교 3개교, 그리고 충주대학교 증평캠퍼스가 있다.

또한 의료시설은 보건소, 보건지소, 보건진료소, 병원, 일반의원, 한의원, 치과의원, 약국 등이 있다.

문화시설로는 지역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문화의 집이 있으며, 문화의 집 내부에는 어린이 놀이방, 정보자료실, 문화관람실 등이 있다. 이와 함께 증평읍 송산리에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한곳에서 볼 수 있는 향토자료 전시관이 있으며, 보강천체육공원과 증평스포츠센터 등의 체육시설이 있다.

민속

증평군 도안면 화성리의 명암마을에는 수백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동약(洞約)이 있어, 마을 주민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서로 도우며 살아왔다. 이 마을에는 특히 불효자에 대한 처벌이 매우 엄격하였는데, 이러한 전통이 현재까지 전해져 이 마을은 경로사상이 아직까지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 이러한 향약의 전통은 100여년 전 동계(洞契) 설립과 함께 계속 이어지고 있다.

또한 증평군 도안면 광덕리 구계마을의 동계는 각 가호 세대주가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되어 있다. 현재 동계좌목(洞契座目)과 동계책수불부(洞契策受拂簿)가 남아 있다. 동계좌목은 동계설립의 의의와 계원 명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계원의 입출계와 생사, 자(字) 등이 기록되어 있어 마을의 호적대장과 비슷하다. 동계책수불부는 1924년부터 매년 동계 자금의 입출금 내역을 기록한 장부로, 매년 빠짐없이 한 해의 결산과 다음 해의 유사(有事)를 정하였으며, 1996년까지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설화·민요

증평읍 장내마을에는 술바위에 대한 설화가 있다. 장내마을에서 초정리(椒井里)로 가는 동리 어귀의 산은 옥녀가 틀에 앉아 있는 형상이라 하여 옥녀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약 500여 년 전, 그 산 밑에 있는 바위에서 술이 흘렀다고 전해진다. 이 술은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목을 적셔주는 노주(露酒)였는데, 어느 누구든지 꼭 한 잔의 술 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루는 이 동리에 들어온 한 노승(老僧)이 이곳에 당도하여 몹시 갈증을 느껴 바위에서 솟는 물을 마시곤, 더 이상 술이 나오지 않자 가지고 온 지팡이로 그 술바위를 때렸더니, 그 후부터 이곳에서 더 이상 술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증평읍 시가지에서 서북쪽으로 2㎞쯤 떨어진 미암1리 미륵댕이 마을에는 미륵사라는 전통사찰 옆에 관음보살입상 한구가 서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조선 중기에 인근 부락민 전체가 질병이 들어 매일 두세 명씩 사망하였는데, 백약이 무효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도승이 나타나 불교를 믿고, 미륵사에 있는 관음 불상에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7일 이내에 효험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부락민들은 합심하여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하였고, 7일 만에 부락민 모두가 쾌차하였다.

그 후부터 마을에서는 연중 한 번씩 합동기도를 올렸고, 현재도 미암리 주민들은 매년 합동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소원성취를 빌고 있다.

증평읍에서 동북쪽으로 1.5㎞ 떨어진 형석중·고등학교 오른쪽에는 미암리 마을이 있다. 과거의 군 소재지이고, 미암리에는 동헌과 시장이 있는데, 지금의 삼거리를 금부라고 불렀다.

현재의 미암리에 위치한 시화부락은, 과거 각처에서 모여드는 상인들의 말(馬)로 역마촌(驛馬村)을 이루었다. 이 마을은 어느 고장보다 살기 좋고 인심이 좋은 마을로 통했는데, 어느 해, 신임 사또가 아름다운 부인과 부임해 오면서부터 통탄할 일이 생기게 되었다.

신임 사또의 부인은 뛰어나게 아름다웠고, 부부간의 금실도 너무나 좋아 이 부부를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지만, 부부는 자식이 없어 근심하였다. 신임 사또의 부인은 부처당골에 있는 절을 찾아가 자식을 얻기 위해 매일 같이 불공을 드렸으나 이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신임 사또의 부인은 자식을 보겠다는 간절한 마음 때문인지 속세를 등진 중생을 유혹하여 정을 통하였는데, 이 사실을 사또가 알게 되었다.

사또는 남자와 부인을 무거운 죄로 다스려 온 고을 백성이 보는 앞에서 머리, 몸을 토막 쳐서 죽이고, 충청감사에게 진언하여 동헌(東軒)을 지금의 괴산군 청안면으로 옮기게 하여 이 고을은 폐허가 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살기 좋고 인심 좋던 고장이 갑자기 폭풍우가 지나간 것처럼 망하였다하여 사람들은 이 고을 일부 동리를 ‘망골’이라 불렀고, 죄인을 다스리던 의금부 자리인 현재 삼거리를 ‘옥고개’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산업·교통

증평군 지역은 과거 넓은 들과 하천을 배경으로 쌀 생산과 과수 재배가 활발하였으나, 교통과 지역방위의 중심지가 된 이후로는 농업 비율이 감소하고, 기타 서비스업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이 지역의 산업체 수는 농업·임업 3개, 제조업 180개, 전기·가스·수도사업 2개, 건설업 54개, 도·소매업 594개, 숙박·음식점업 452개, 금융·보험업 25개, 부동산임대업 52개 등 총 2191개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경지면적 23.97㎢ 가운데 논이 61%, 밭이 39%를 차지한다. 2007년 현재 쌀 생산량은 6,990톤으로, 전체 식량작물 생산량의 97%를 차지하였다. 해안이 없는 내륙에 위치하여 기후와 토질이 인삼재배에 적합하며, 인삼 생산량은 396톤으로 농가 소득의 주수입을 담당하고 있다. 농산물은 벼·고추·사과·상황버섯 등이 생산되고, 특히 인삼이 많이 재배된다. 인삼은 군의 마스코트로 여겨질 만큼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특산물로는 인삼·증평새로미쌀·진흙 소담미·사과·민속한과·상황버섯·막창순대·증평삼겹살 등이 있다.

농공단지는 증평·도안에 2개가 있는데, 총 7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관내 총 기업체 수는 90개이다.

재래시장으로는 증평장뜰시장이 있다. 상설시장이면서도 매월 1·6일에 맞춰 전통 5일장이 열린다.

교통은 복선화된 충북선과 청주-충주 간의 국도가 남북을 관통하고, 도안면-괴산읍 간의 지방도가 동쪽으로 연결되며, 중부고속도로가 남북으로 달리고 있다. 또한 청주국제공항, 중부고속도로, 충북선, 34·36번 국도가 관통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향토부대가 주둔해 있어 지역방위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3개 노선 도로의 총연장 길이가 80㎞이며, 포장률은 64.1%이다. 전체 노선 도로는 일반국도가 14㎞, 지방도 20㎞, 시군도 46㎞로 이루어져 있다.

관광

증평군에서는 충북인삼과 증평문화를 접목시켜 충북인삼의 차별화와 우수성을 전국에 알리기 위한 충북인삼축제와 증평문화제가 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또한 매해 정월 대보름에는 증평읍 연탄2리 두타산 자락에 위치한 보타사에서 정월대보름맞이 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전국장사씨름대회도 이와 연계하여 같은 기간에 열리고 있다.

이밖에 백제의 칠지도(七支刀)를 재현하는 증평 대장간도 군의 대표적인 명물로 꼽힌다.

한편 해발 598.8m인 두타산은 증평읍과 도안면에 걸쳐 세가 작은 바위 및 암벽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등산코스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좌구산 자락에 위치한 율리는 점촌, 밤티, 삼기 등 3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 사람들이 산자락을 개간하여 논밭을 일구고 살아가는 산골마을이다. 이 산골마을들을 감싸고 있는 좌구산은 산세가 좋고, 물이 좋아 ‘증평의 알프스’라 불리고 있다.

읍·면
  1. 증평읍(曾坪邑)

증평군 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55.40㎢, 인구는 3만 4492명이다.(2015년 현재)

84개 행정리(20개 법정리), 76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서쪽으로 청원구 북이면과 북일면, 동쪽으로 청안면, 북쪽으로 도안면과 진천군 초평면에 접한다. 금강의 지류인 보강천이 서쪽에서 읍 중앙을 지나 흐른다. 읍의 대부분이 낮은 평지이며, 일부 지역에 200m 이하의 구릉지가 산재하고 있다.

현재의 증평읍은 조선시대 청안군에 속하였으며, 청안군의 서쪽에 가까이 있다 하여 근서면(近西面)이라고 불렸다.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으로, 괴산군에 편입되어, 증천과 장평에서 한 글자씩 딴 이름인 증평면으로 불리게 되었고, 1949년 증평읍으로 승격되었다. 1990년 증평출장소가 설치되어 증평 지역을 증천지소와 장평지소로, 도안면을 도안지소로 개칭하고, 충청북도 도청에서 관할하였다. 이후 2003년 「증평군 설치에 관한 법률(법률 제6902호)」에 따라 증평군이 설치되었고, 증천지소와 장평지소가 통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쌀·보리 등의 곡물 생산이 가장 많고, 잎담배·사과 등의 과수재배도 활발하며 농가의 부업으로 양잠도 이루어진다. 또한 인삼의 생산도 증가되어 농가의 소득이 증대되고 있다. 제조업은 부진한 편이며, 식품·음료·섬유 등의 소규모 경공업 업체가 몇 개 있을 뿐이다.

철도교통과 도로교통이 편리한 지역으로, 충북선이 읍의 중앙을 관통하고, 청주-충주, 청주-괴산 등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있는 교통의 요지이다.

문화재로는 증평 남하리사지 삼층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4년 지정), 증평 남하리사지 마애불상군(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98년 지정), 증평 미암리 석조관음보살입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98년 지정), 증평 남하리 석조보살입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2001년 지정), 율리 석조관음보살입상(충청북도 문화재자료, 2002년 지정), 배극렴 묘소(충청북도 기념물, 1994년 지정), 이성산성(尼聖山城), 단군전(檀君殿) 등이 있다.

관할지역은 증평리(曾坪里), 교동리(校洞里), 중동리(中洞里), 대동리(大洞里), 신동리(新洞里), 창동리(昌洞里), 장동리(藏洞里), 증천리(曾川里), 내성리(內省里), 초중리(楚中里), 연탄리(連灘里), 송산리(松山里), 미암리(彌岩里), 사곡리(射谷里), 용강리(龍江里), 덕상리(德祥里), 남차리(南次里), 율리(栗里), 죽리(竹里), 남하리(南下里)로 이루어져 있다.

  1. 도안면(道安面)

증평군 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26.43㎢, 인구는 2,179명이다.(2015년 현재)

동쪽은 괴산군 사리면, 서쪽은 진천군 초평면, 남쪽은 증평읍과 괴산군 청안면, 북쪽은 음성군 원남면에 접하여 있다.

475년(장수왕 63)에는 물노군 도서현, 757년(경덕왕 16)에는 흑양군 도서현, 940년(태조 23)에는 청주목 도안, 1413년(태종 13)에는 청안현(청당현·도안현 병합)에 속하였다.

이 지역은 1990년 증평출장소 내에 도안지소가 설치되어 도(道)에서 직접 관할하다가, 2003년 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으로 개칭되었다.

면의 북서부에는 해발고도 200∼300m의 구릉지가 분포하고, 나머지 지역에는 보강천의 여러 지류가 개석(開析)된 평야가 넓게 발달되어 있다.

도안면은 교통의 요지로 충북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이곳에 도안역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국도 34·36호가 있으며, 지방도와 군도 2호가 분기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대규모 농지정리와 하천정비 사업으로 논농사가 활발히 이루어지게 되었고 담배, 인삼, 고추 재배와 대규모 축산 등으로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문화재로는 증평 광덕사 석조여래입상, 기자영전(箕子影殿), 연촌리 성지(硯村里城址), 광덕리 석탑재(光德里石塔材) 등이 있다.

관할지역은 화성리(花城里), 노암리(老岩里), 연촌리(硯村里), 송정리(松亭里), 광덕리(光德里), 석곡리(石谷里), 도당리(道塘里)의 7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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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군(www.jp.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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