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부(義城府) 사람. 초명은 홍술(洪術, 洪述).
마군장군(馬軍將軍)으로 신숭겸(申崇謙)·복지겸(卜智謙)·배현경(裵玄慶)과 함께 혁명을 일으켜 궁예(弓裔)를 몰아내고 왕건(王建)을 추대하여 개국1등공신이 되었다.
918년(태조 원년) 청주(靑州)에서 변란이 일어날 것을 염려하여 유금필(庾黔弼)과 함께 병사 1,500명을 거느리고 진주(鎭州)에 주둔하며 대비하였다. 이 때문에 청주에서 반란이 일어나지 않아 대상(大相)에 올랐다.
이듬해인 919년(태조 2)에는 오산성(烏山城)을 고쳐 예산현으로 하자 대상(大相) 애선(哀宣)과 함께 유민(流民) 500여 호를 옮겨 안정시키기도 하였으며, 이어 대상에서 태사 삼중대광(太師三重大匡)으로 올랐다.
그의 딸이 태조의 제26비 의성부원부인(義城府院夫人)이 되어 의성부원대군을 낳으면서 태조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936년 후백제와의 마지막 전투인 일리천 전투에 대상으로서 마군을 거느리고 우강(右綱)을 인솔하여 큰 공을 세웠다. 994년(성종 13) 태사가 추증되었으며, 태사개국충렬공(太師開國忠烈公)으로서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