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명암약수터 뒷산에 소재하고 있다. 1977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묘역은 약 500평으로 봉분의 높이 150㎝ㆍ폭 390㎝이며, 묘표 2기(基)ㆍ상석과 좌ㆍ우에 문인상이 있다.
묘소는 본래 청원군 북이면 대율리에 있던 것을 1975년 국토개발지구로 지정됨에 따라 지금 위치로 옮겼다. 묘표 1기는 최익현(崔益炫)이 지었다.
신도비는 1884년(고종 21)에 세운 것으로 묘소 아래 50m지점의 산 입구에 있는데, 비신(碑身)의 높이 176㎝ㆍ장방형의 대석(臺石)과 팔작지붕형의 개석(蓋石)을 포함한 전체높이 230㎝이다. 비문은 김복한(金福漢)이 짓고 오영근(吳英根)이 썼다. 그 앞에는 1980년에 「감도해(感渡海)」를 새긴 연담시비를 세웠다. 묘소 좌측 아래에 사당인 청원사(淸原祠)가 있다.
곽예(1232∼1286)의 본관은 청주ㆍ자는 선갑(先甲)ㆍ호는 연담(蓮潭)으로 1255년(고종 4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첨사부녹사(詹事府錄事)ㆍ국자감대사성(國子監大司成)ㆍ감찰대부(監察大夫) 등을 지냈다. 시서문(詩書文)에 모두 능했으며, 그 작품의 일부는 『동문선(東文選)』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