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고려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목은(牧隱) 이색(李穡)은 1396년(태조 5) 69세로 여주 신륵사에서 사망하였는데, 셋째 아들 종선(種善)이 한산으로 영구를 모셔와 건지산(乾至山) 아래(지금의 서천군 기산면 영모리) 선영에 장사지냈다.
문헌서원(文獻書院)의 좌측 기린산(麒麟山)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무덤의 형태는 원형봉토분이며 무덤 앞에는 망주석(望柱石)·문인상(文人像)·마상(馬像)이 각각 2기씩 양쪽에 늘어서 있고 비석이 상석(上席) 오른쪽에 서 있다.
비는 가첨석(加詹石)이 있는 단순한 형태인데 앞면에 ‘牧隱先生李穡之墓(목은선생이색지묘)’라고 새겨져 있다. 이색의 묘표는 1433년 손자 맹균(孟畇)이 찬했고, 목은 배위인 안동권씨 묘비는 1404년 권근(權近)이 지었으며, 신도비는 하륜(河崙)이 지었고 공부(孔俯)가 썼으며, 음기(陰記)는 송시열(宋時烈)이 지었고, 12대손 수경(壽慶)이 쓰고 김수항(金壽恒)이 전(篆)을 하였고 1666년(현종 7) 후손 등이 건립한 것이다.
1988년 새로 세운 비가 문헌서원 광장에 서 있다. 목은의 무덤은 풍수지리에 의하면 기린하전(麒麟下田)에 묻혔다고 하며 산소자리는 무학대사가 점지한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