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전의부령, 예조총랑, 집현전태학사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당시 그는 소격전제조(昭格殿提調)를 겸직하고 있었는데, 태종의 명에 의하여 중국에 가서 도교의 초사(醮祀) 등 도교의식을 배워왔고, 또 동남동녀를 거느리고 광연루(廣延樓) · 상림원(上林園) 등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1413년 4월, 태종은 부친상중에 있는 그에게 수진(修眞 : 장생불로의 수련법)에 관해서 물어보기도 하였다. 1416년 천추사(千秋使)로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는데, 젊어서는 정몽주(鄭夢周) · 이색(李穡) 등과 교유하였다.
세상에서는 그의 관대한 성품과 솔직함을 높게 평가하여 팔청(八淸)의 우두머리라고 칭하였고, 또한 초서와 예서에도 매우 능하였는데, 양주의 회암사(檜巖寺)에 있는 묘엄존자무학선사탑비(妙嚴尊者無學禪師塔碑)와 한산에 있는 한산군이색신도비(韓山君李穡神道碑)는 그의 필적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
- 『태조실록』
- 『태종실록』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 『동국궐리지(東國闕里志)』
- 『조선도교사』(이능화, 동국대학교출판부, 195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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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서장관으로 중국행 : 태종실록2권, 1401년(태종 1) 8월 12일. "사윤 공부의 죄를 벗기기 위해 서장관으로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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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기우제 주관 : 태종실록21권, 1411년(태종 11) 6월 14일. "가뭄을 근심하여 정사를 보지 않고 기우제를 지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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