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0년(선조 3)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경연(慶延) · 박훈(朴薰) · 김정(金淨) · 송인수(宋麟壽)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며, 그 뒤에 한충(韓忠) · 송상현(宋象賢) · 이색(李穡) · 이이(李珥) · 이득윤(李得胤)을 추가 배향(配享:학덕 있는 사람의 神主를 모시는 것)하였다.
임진왜란 때 병화(兵禍)로 훼손된 것을 곧이어 복원하였으며, 1660년(현종 1)에 ‘신항’이라고 사액(賜額)되었다.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毁撤)되었다.
광복 후 지방 유림의 발기로 당시 충청북도 지사 정낙훈(鄭樂勳)과 청원 군수 서정국(徐廷國)이 출자하여 복원하였으나 시설이 미약하고 퇴락하여, 1985년 원장(院長) 유용기(柳龍紀)를 비롯한 유림의 협력으로 다시 중건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4칸의 사우(祠宇), 중앙의 신문(神門)과 양옆 협문으로 된 내삼문(內三門), 6칸의 재실 겸 강당, 5칸의 수호사(守護舍), 묘정비각(廟庭碑閣) · 외삼문(外三門) · 정문(旌門) 등이 있다.
사우에는 이이를 주벽(主壁)으로 하여 이색 · 경연 · 박훈 · 김정 · 송인수 · 한충 · 송상현 · 이득윤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재실은 향사(享祀:제사) 때 제관(祭官)들의 숙소 및 강학 장소로 사용하며, 수호사에는 관리인이 거주하고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3월 초정(初丁:첫번째 丁日)과 9월 초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제사 음식)은 8변(籩) 8두(豆)이다. 1977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유물로는 《원지 院誌》와 이이가 지은 《서원향약 西原鄕約》, 배향된 아홉 선현의 약력 등이 비치되어 있다. 재산으로는 대지 2,000여 평, 전답 5,000여 평, 임야 100정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