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박훈 신도비
명랑하다 [청] 맑다 [청]
부수 水 총획 11
나라 이름 [주] 섬 [주]
부수 巛 총획 6
나무껍질 [박] 후박 [박] 나무껍질 [부] 후박 [부] 밑동 [복] 오랑캐 이름 [푸]
부수 木 총획 6
향기롭다 [훈] 태우다 [훈]
부수 艸 총획 20
하느님 [신] 천신 [신]
부수 示 총획 10
말하다 [도] 인도하다 [도]
부수 辵 총획 13
비석에 쓰이는 문체 [비] 돌을 세우다 [비]
부수 石 총획 13
- 예술·체육
- 유적
- 조선 후기
- 시도문화유산
- 명칭 청주 박훈 신도비 (淸原 朴薰 神道碑)
- 분류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 소재지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신촌리 산9-13
- 웹페이지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301810000
- 위도36.6604822336036
- 종목 시도유형문화유산(1995년 06월 30일 지정)
- 지정기관충청북도
- 집필 1995년
- 이완우 (원광대학교, 미술사)
- 최종수정 2024년 07월 04일
박훈 신도비 / 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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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에 있는 조선전기 명신 박훈의 신도비.
내용
박훈은 유학자 박증영(朴增榮)의 아들로 1504년(연산군 10) 사마시에 합격했고 그 뒤 1519년(중종 14) 현량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동부승지 등을 지내던 중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화를 당하여 17년간 유배되었다. 1536년(중종 3)에 풀려나 말년을 외가에서 보냈다. 시호는 문도(文度).
이 신도비는 1748년(영조 24)에 그의 인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박필주(朴弼周)가 비문을 지었고 윤득화(尹得和)가 썼으며 유척기(兪拓基)가 두전(頭篆)을 했다. 비 뒷면에는 성혼(成渾)이 지은 묘문(墓文)이 새겨져 있다. 비는 화강암제 네모받침 위에 비신(碑身)을 얹고 그 위에 화강암으로 팔작지붕 모양의 덮개돌을 얹은 일반 형식이다. 석질이 양호하여 모든 부분이 잘 남아 있으며 특히 덮개돌의 세부 조각이 정교하다. 1957년 겹처마 팔작지붕의 비각(碑閣)을 건립하여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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