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연대는 미상이나,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당시 교동(校洞)에 창건되었다.
1807년에 위치가 좁고 나쁘다 하여, 곤양군수 신오(申晤)가 향유(鄕儒)들과 함께 현위치로 이건하였다. 1822년 대성전을 중수하였고, 1947년 화재로 소실된 풍화루(風化樓)를 재건하였으며, 1975년 내삼문(內三門)과 명륜당을 보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은 5칸의 대성전과 7칸의 명륜당, 전직사(殿直舍) · 동재(東齋) · 풍화루 · 내삼문(內三門) · 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 가을의 석전제(釋奠祭)와 초하루 · 보름의 삭망제(朔望祭)만 실시되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18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8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소장 전적 가운데 『조선청금록(朝鮮靑衿錄)』 · 『동성승람(東城勝覽)』 · 『향교급각단응행절목(鄕校及各壇應行節目)』 등은 이 지방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