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 연대는 미상이다. 다만, 현의 동쪽 1리에 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으로 보았을 때 15세기 어느 시점에 건립되었다고 판단된다. 곤양향교 건립은 조선 건국 후 1읍 1교 원칙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조선의 향교 건립은 지방 인재 양성 및 교화를 위해 시행된 것이었다.
곤양향교의 창건 연대는 미상이다. 1546년에 군수 노진이 부임하여 정동으로 이건했다고 한다. 1663년(현종 4)에는 군수 박영계(朴永繼)가 범동(凡洞)으로 옮겼고, 1807년(순조 7)에는 군수 신오(申晤)가 부임해 향교의 위치가 좁고 나쁘다고 하여 향유(鄕儒)들과 함께 다시 현재의 위치로 이건(移建)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군수 구의조(具義祖) 재임시 대성전을 중수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이후 1818년 군수 권사규(權思奎) 재임 당시 향교가 중수되었고, 1869년에는 풍화루가 중수되었다. 20세기에도 서재와 대성전 등이 중수되었다. 1914년 곤양군은 경상남도 하동군과 사천군으로 분할 편입되었으며, 곤양향교는 사천군[지금의 사천시]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 곤양향교는 5칸의 대성전과 7칸의 명륜당, 동재와 서재, 풍화루, 내삼문, 외삼문 등이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 아래 구성되어 있다.
조선은 건국 후 향교에 전답과 노비 등을 지급하고 교관을 파견해 교생들을 가르쳤고, 봄과 가을에는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도록 했다. 이는 전국적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유학 이념으로서 백성들을 교화시키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했고, 그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게 되었다. 곤양향교는 198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