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 연대는 미상이다. 다만, 고려 후기 남양은 충렬왕 대에 강령도호부(江寧都護府)를 거쳐 익주목(益州牧)이 되었다가, 충선왕 대에 다시 강등되어 부가 되었고, 조선 태종 대에 도호부가 되었다. 이러한 건치연혁으로 보았을 때 고려 후기에 이미 향교가 건립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1873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건되었으며, 현전하는 건물들은 이때 건립된 것에서부터 유래한 것이다.
남양향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로 전면에는 명륜당과 동재 · 서재가 있고, 후면에 대성전이 들어서 있다. 1873년 이건 당시에는 대성전과 동무 · 서무, 명륜당과 동재 · 서재, 그리고 부속 건물들이 있었으나, 동무 · 서무 · 명륜당 등이 훼철되었다가 1990년대에 들어 명륜당이 복구되었다.
조선은 건국 후 향교에 전답과 노비 등을 지급하고 교관을 파견해 교생들을 가르쳤고, 봄과 가을에는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도록 했다. 이는 전국적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유학 이념으로서 백성들을 교화시키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했고, 그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게 되었다. 남양향교는 1983년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