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전라도 낙안군에 세워진 향교.
건립 경위
창건 연대는 미상이다. 다만, 군의 북쪽 1리에 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으로 보았을 때 15세기 어느 시점에 건립되었다고 판단된다. 낙안향교 건립은 조선 건국 후 1읍 1교 원칙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조선의 향교 건립은 지방 인재 양성 및 교화를 위해 시행된 것이었다.
변천
형태와 특징
의의 및 평가
조선은 건국 후 향교에 전답과 노비 등을 지급하고 교관을 파견해 교생들을 가르쳤고, 봄과 가을에는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도록 했다. 이는 전국적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유학 이념으로서 백성들을 교화시키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했고, 그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게 되었다. 낙안향교는 1985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석전대제를 비롯해, 기로연, 서예교실, 청소년 인성교육 등의 다양한 행사들을 통해 지역 문화 창달에 일조하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 『교궁대관(校宮大觀)』(성균관, 2001)
- 『전남의 향교』(전라남도, 1987)
- 『문화유적총람』 (문화재관리국, 1977)
- 『순천승주향토지』(순천문화원, 1975)
논문
- 조상순, 「조선 중기 이전 향교건축의 형성과 전개: 관련 문헌 자료를 중심으로」(성균관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3)
주석
-
주1
: 전라남도 순천시 일대의 옛 이름. 백제 때 분차군(分嵯郡)이라 하였고, 신라 때에는 분령군(分嶺郡)으로 고쳐 불렀다. 고려 때 와서 낙안군이라 하고 나주의 속현으로 삼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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