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향교 ()

유적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평안도 개천군에 세워진 향교.
유적
건립 시기
조선 전기
관련 국가
조선
소재지
북한 평안남도 개천시 조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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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개천향교는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평안도 개천군에 세워진 향교이다. 16세기 중후반에 대규모 중건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는 평안남도 개천시 소재로 되었으며, 1950년대 이후의 상황은 알려져 있지 않다.

키워드
정의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평안도 개천군에 세워진 향교.
건립 경위

창건 연대는 미상이다. 다만, 현의 동쪽 1리에 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으로 보았을 때 15세기 어느 시점에 건립되었다고 판단된다. 개천향교 건립은 조선 건국 후 1읍 1교 원칙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조선의 향교 건립은 지방 인재 양성 및 교화를 위해 시행된 것이었다.

변천

개천향교는 조선 전기 개천군의 관아 동쪽 1리에 있었다. 신혼(申混)의 「개천군신수향교기(价川郡新修鄕校記)」에 따르면, 최윤호(崔潤湖)가 수령으로 재임할 당시 대규모의 중수가 이뤄졌다고 한다. 노수신((盧守愼)의 『소재집(穌齋集)』에서도 진도향교를 중건한 최윤호가 확인되는데, 『진도군지(珍島郡志)』에서 명종 대 진도군수를 역임한 최윤호를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봤을 때, 개천향교는 16세기 중후반 어느 시점에 중건된 것으로 판단된다.

형태와 특징

신혼의 「개천군신수향교기」에 따르면, 당시 중건된 향교는 문묘는 크고 웅장했으며, 담장, 기와를 비롯한 다양한 부속건물들을 갖추었고, 특히 명륜당은 좌우에 협실까지 갖추었다.

의의 및 평가

조선은 건국 후 향교에 전답과 노비 등을 지급하고 교관을 파견해 교생들을 가르쳤고, 봄과 가을에는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도록 했다. 이는 전국적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유학 이념으로서 백성들을 교화시키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했고, 그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게 되었다. 개천향교는 북한에 소재하고 있어, 1950년대 이후의 상황은 미상이다.

참고문헌

원전

『초암집(初菴集)』 권10, 「개천군신수향교기(价川郡新修鄕校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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