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연대는 미상이며,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지방의 유학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설립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무(東廡)·서무(西廡)·전사청(典祀廳)·숭화재(崇華齋)·신문(神門) 등이 있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송조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숭화재는 의병장 유인석(柳麟錫)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유인석은 1895년에 명성황후가 왜적에게 시해되고 일제가 국정에 간섭하자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사방에 격문을 보내, 이후 평안도 유생들과 결합하여, 개천향교에 있는 숭화재를 총본영으로 삼아 항일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특히 유인석은 숭화재의 동북방향에 숭화묘를 창건하여 공자와 기자의 진상을 봉안하고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과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를 배향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여왔으며, 1950년대 이후의 상황은 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