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지도가 첨부된 필사본. 표지에는 ‘平安南道价川郡邑誌地圖謄本成冊(평안남도개천군읍지지도등본성책)’이라고 되어 있다.
내용구성은 진관(鎭管)·방리(坊里)·도로(道路)·건치연혁(建置沿革)·군명(郡名)·성지(城池)·관직(官職)·산천(山川)·천택(川澤)·누대(樓臺)·성씨(姓氏)·풍속(風俗)·단묘(壇廟)·공해(公廨)·창고(倉庫)·물산(物産)·교량(橋梁)·역원(驛院)·관애(關阨)·사찰(寺刹)·열부(烈婦)·효자(孝子) 등으로 되어 있다.
이 읍지는 1895년에 작성된 ≪관서읍지 關西邑誌≫(26책, 필사본, 규장각도서)에 들어 있는 ≪개천군읍지≫를 대부분 전사한 것이다. 단지 산천조를 ‘산천조’와 ‘천택조’로 분리하였고, ‘누대조’와 ‘성씨조’가 첨가되어 있는 차이가 있다.
1895년의 읍지는 영조대에 편찬된 ≪여지도서 輿地圖書≫를 저본으로 하여 작성한 것으로서, 이 읍지에서도 영조대의 기록을 답습하고 있는 내용들이 있다. 일례로 ‘방리조’는 각 면별로 소속 이수(里數)와 관문으로부터의 거리, 호구수(帳籍編戶 및 男女人口)가 기록되어 있는데, 호구수는 ≪여지도서≫의 내용과 일치한다.
그런데 1895년의 읍지는 한전(旱田)·수전(水田)·진공(進貢)·조적(糶糴)·봉름(俸廩)·군총(軍摠) 등 사회·경제적인 조목을 별도로 설정한 읍사례(邑事例)에 수록하였으나, 이 읍지는 읍지 부분만을 전사한 까닭에 사회·경제적인 내용이 누락되고, 1899년의 읍사정을 충실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읍지가 되었다.
그러나 ‘공해’·‘창고’ 등의 기록은 건물의 규모를 각 명칭과 용도별로 칸수까지 자세하게 기재하고 있어서, 관청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