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채색지도가 첨부된 필사본. 표제는 ‘光武三年六月日黃海道康翎郡邑誌及地圖(광무삼년유월일황해도강령군읍지급지도)’ 되어 있다.
내용구성은 진관(鎭管)·강역(疆域)·방리(坊里)·건치연혁(建置沿革)·관직(官職)·산천(山川)·성씨(姓氏)·풍속(風俗)·단묘(壇廟)·공해(公廨)·제언(堤堰)·형승(形勝)·창고(倉庫)·물산(物産)·객사액(客舍額)·원우(院宇)·교량(橋梁)·봉수(烽燧)·사찰(寺刹)·고적(古蹟)·인물(人物)·한전(旱田)·수전(水田)·진공(進貢)·조적(糶糴)·전세(田稅)·봉름(俸廩)·군병(軍兵)·균세(均稅)·읍선생(邑先生) 등으로 되어 있다.
이어서 강령군 신흥방(新興坊)으로 소속된 등산진(登山鎭)의 지지인 <전등산진지 前登山鎭誌>가 첨부되어 있다. 그 내역은 진관 및 정도(程途)·포촌(浦村)·진보(鎭堡)·목장·관애(關阨)·공해·창고·봉수·관직·풍속·성씨·고적·물산·진공·균세·봉름·조적·군병·진도(津渡)의 항목으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체재와 내용은 1871년(고종 8)에 작성된 ≪해서읍지 海西邑誌≫ 속의 ≪강령읍지≫와 유사하나 인구·세액에서 변화된 내용을 기록하여 차이가 보인다. 방리조와 제언조의 기록이 특징적이다.
방리조에는 각 방의 옛 이름과 소속 이수(里數), 관문(官門)으로부터의 거리, 원호(元戶), 남녀 인구수를, 제언조에는 각 천방(川防)의 위치·크기, 원류(源流)와 유입처, 관개면적, 물레방아[水桶]의 수를 기재하였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