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지도가 첨부된 필사본.
내용구성은 강계(疆界)·방리(坊里)·도로·건치(建置)·군명·형승(形勝)·성지(城池)·관직·산천·성씨·풍속·능침·단묘(壇廟)·공해(公廨)·제언(堤堰)·창고·물산·교량·역원·목장·관애(關阨)·봉수·누정·사찰·고적·진보(鎭堡)·인물·효자·열녀·한전(旱田)·수전(水田)·진공(進貢)·조적(糶糴)·전세(田稅)·대동(大同)·균세(均稅)·봉름(俸廩)·책판(冊板) 등으로 되어 있다.
목차 및 체재는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 輿地圖書≫에 있는 ≪금성읍지≫와 동일하나, 기록 내용의 일부가 조금씩 바뀌었다.
즉, 방리조에 면·이별 편호(編戶)·남녀인구수·관문거리(官門距離)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편호·인구수가 기묘조로부터 갑오조를 기준으로 하여 감소, 변화되었다. 또한, 전세·대동·균세·봉름 등 조세관계의 액수도 변경되었다.
풍속조에는 “상장(喪葬)을 신중히 하고 무당과 박수를 숭상하여 농사에 힘쓴다. 혹, 남초(南草 : 담배)를 재배하여 영동(嶺東)의 물고기와 교환하는 것을 업으로 삼기도 한다.”라고 하여 담배를 재배하여 영동·관북지방의 수산물과 교환하는 실정을 보여준다.
이는 영조 이후 상업적 농업이 진전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밖에도 1871년에 편찬된 ≪관동읍지≫ 제7책에 실려 있는 ≪금성읍지≫가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