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군여지지 ()

봉산군여지지
봉산군여지지
인문지리
문헌
1899년, 황해도 봉산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
이칭
이칭
봉산읍지(鳳山邑誌)
문헌/고서
편찬 시기
1899년
편저자
황해도 봉산군(鳳山郡)
권책수
2책
권수제
봉산군여지지(鳳山郡輿地誌)
판본
필사본
표제
봉산읍지(鳳山邑誌)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봉산군여지지』는 1899년 황해도 봉산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2책 51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2책은 채색 지도 1장으로 구성하였다. 19세기 말 봉산군의 호구 현황을 기록해 놓았다. 그 밖에 문화적 배경 및 행정 현황 등 당대의 지역 사정을 수록하여 지역사를 연구하는 데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정의
1899년, 황해도 봉산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
저자 및 편자

『봉산군여지지(鳳山郡輿地誌)』는 황해도 봉산군(鳳山郡)에서 편찬하였다.

서지사항

2책 51장의 필사본이다. 표제는 ‘봉산읍지(鳳山邑誌)’이고, 권수제는 ‘봉산군여지지’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편찬 및 간행 경위

대한제국 출범 이후 지방행정 정보를 새롭게 확보하는 과정에서 추진된 읍지상송령(邑誌上送令)에 따라 1899년(광무 3)에 편찬하였다. 대한제국 내부는 13도 관찰부에 훈령을 내려 각 군의 읍지와 지도 2건씩을 한 달 안에 제출하게 하였다. 고종 대 당시의 급변하는 정세에 대비하고, 1896년(고종 33) 지방제도 개편 이후 지방행정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구성과 내용

제1책은 50장, 제2책은 채색 지도 1장으로 구성하였다. 수록 항목은 군계(郡界), 건치연혁(建置沿革), 방리(坊里), 도로, 관함(官啣), 산천, 포구(浦口), 형승(形勝), 풍속(風俗), 물산(物産), 인물, 우거(寓居), 효자, 열녀, 효녀, 절부(節婦), 효부(孝婦), 문과, 무과, 생진(生進), 관방(關防), 관사(官舍), 단사(壇祠), 교원(校院), 공해(公廨), 창고(倉庫), 역원(驛院), 교량(橋梁), 제언(堤堰), 장시(場市), 촌장(村庄), 명관(名官), 재소(齋所), 사찰, 군총(軍摠), 진공(進貢), 조적(糶糴), 전세(田稅), 균세(均稅), 대동(大同), 봉름(俸廩), 시부기(詩賦記)로 구성하였다.

의의 및 평가

19세기 말 봉산군의 호구 현황은 물론, 자연지리와 문화적 배경, 행정 현황 등 당대 지역의 전반적인 상황을 기록해 놓은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원전

『여지도서(輿地圖書)』
『해서읍지(海西邑誌)』

인터넷 자료

관련 미디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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