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향교 ()

유적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평안도 강서현에 세워진 향교.
유적
건립 시기
조선 전기
관련 국가
조선
소재지
북한, 남포특별시 강서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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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강서향교는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평안도 강서현에 세워진 향교이다. 조선 후기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되었다. 강서면이 남포특별시에 편입됨에 따라 현재는 남포직할시 소재로 되었으며, 1950년대 이후의 상황은 알려져 있지 않다.

키워드
정의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평안도 강서현에 세워진 향교.
건립 경위

창건 연대는 미상이다. 다만, 현의 서쪽 1리에 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으로 보았을 때 15세기 어느 시점에 건립되었다고 판단된다. 강서향교 건립은 조선 건국 후 1읍 1교 원칙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조선의 향교 건립은 지방 인재 양성 및 교화를 위해 시행된 것이었다.

변천

강서향교는 조선 전기 강서현의 관아 서쪽 1리에 위치했으나, 어느 시점에 다른 장소로 이건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천보(李天輔)가 작성한 「강서향교이건비기(江西鄕校移建碑記)」에 따르면, 현재 향교 위치가 '산세가 험하고 물이 들이치니 그 터가 맞지 않다'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숙종 대 현령 조정신(趙正伸)으로부터 이건 논의가 발의되고, 이숭신(李崇臣) 등이 거듭 발의한 끝에, 1739년 현령 김치일(金致一)이 부임한 뒤 1740년 2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5월에 마무리지었다.

형태와 특징

이천보의 기문에 따르면, 이건된 향교는 "건물이 숭엄하고, 문과 누각이 크고 시원해, 그 규모와 위치가 갖춰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라고 했는데, 이것으로 보아 향교가 갖춰야 할 건물들의 대부분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의 및 평가

조선은 건국 후 향교에 전답과 노비 등을 지급하고 교관을 파견해 교생들을 가르쳤고, 봄과 가을에는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도록 했다. 이는 전국적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유학 이념으로서 백성들을 교화시키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했고, 그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게 되었다. 강서향교는 북한에 소재하고 있어, 1950년대 이후의 상황은 미상이다.

참고문헌

원전

『평안남도지(平安南道誌)』(1977)
『강서군지(江西郡誌)』(1967)
『진암집(晉菴集)』 권6, 「강서향교이건비기(江西鄕校移建碑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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