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6년(중종 11)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유학교육 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그 뒤 향교가 퇴락하자, 1699년에 현령 조정신(趙正伸)을 비롯하여 여러 명이 수차에 걸쳐 향교 이전을 상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739년에 현령 김치일(金致一)과 지방유림의 적극적인 운동으로 1740년에 무학산(舞鶴山) 아래로 이건하였다.
당시의 경내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신문(神門)·전사청(典祀廳)·사후청(伺候廳)·홍살문 등이 있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 등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에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해왔으나, 1950년대 이후의 상황은 자세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