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향교 ()

유적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평안도 강동현에 세워진 향교.
유적
건립 시기
조선 전기
관련 국가
조선
소재지
북한 평양직할시 강동군 강동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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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강동향교는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평안도 강동현에 세워진 향교이다. 조선 후기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되었다. 강동면이 평양직할시에 편입됨에 따라 현재 평양직할시 소재로 되어 있으며, 1950년대 이후의 상황은 알려져 있지 않다.

키워드
정의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평안도 강동현에 세워진 향교.
건립 경위

강동향교는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평안도(平安道) 강동현(江東縣)에 세워진 향교로, 창건 연대는 미상이다. 다만, 현의 북쪽 2리에 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으로 보았을 때 15세기 어느 시점에 건립되었다고 판단된다. 강동향교 건립은 조선 건국 후 1읍 1교 원칙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조선의 향교 건립은 지방 인재 양성 및 교화를 위해 시행된 것이었다.

변천

강동향교는 조선 전기 고천면 고성(古城) 북방에 위치했다. 이후 대박산(大朴山)으로 옮겼다가 1611년에 유생 유우하(柳遇夏)와 이가인(李家仁) 등의 상소로 현재의 위치에 이건하였으며, 1787년에 현감 서영수(徐英修)가 개축하였다.

형태와 특징

1931년의 기록에 따르면, 대성전 · 명륜당 · 동무(東廡) · 서무(西廡) · 동재 · 서재 · 신문(神門) 등이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 향교가 갖춰야 할 건물들의 대부분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의 및 평가

조선은 건국 후 향교에 전답과 노비 등을 지급하고 교관을 파견해 교생들을 가르쳤고, 봄과 가을에는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도록 했다. 이는 전국적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유학 이념으로서 백성들을 교화시키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했고, 그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게 되었다. 강동향교는 북한에 소재하고 있어, 1950년대 이후의 상황은 미상이다.

참고문헌

원전

『강동군지(江東郡誌)』(1984)
『평안남도지(平安南道誌)』(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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