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갈천서당은 1573년 조선 전기 문신 갈천 임훈과 동생 임운이 후학 양성을 위해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에 건립한 서당이다. 임훈이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에 동생 임운과 성팽년 , 정유명, 정몽서, 신복행 등이 합심하여 서당을 만들었다. 이후 화재로 인하여 몇 번의 이건과 중건을 반복하다가 결국 소실되었으나, 1877년(고종 14) 정몽서 및 임훈의 후손들이 합심하여 재건했다. 현재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강당과 솟을 대문이 남아있으며, 뜰에는 후손들이 세운 두 형제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정의
1573년, 조선 전기 문신 갈천 임훈과 동생 임운이 후학 양성을 위해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에 건립한 서당.
건립 경위
임훈은 1540년(중종 35) 생원시에 합격했고, 1553년(명종 8) 54세 때 관천(館薦)에 의하여 관직에 나아갔으나, 노부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다시 천거되어 언양현감, 비안현감에 임명되었고, 광주목사를 역임한 뒤에도 장악원정, 장예원 판결사 등에 임명되었지만 관직을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그는 고향에 머물면서 갈천에서 90리 떨어진 마학동(磨學洞)에 학문을 강론하기 위해 서당을 지었는데, 그가 죽으면서 서당은 쇠퇴했다. 이런 상황을 안타갑게 여긴 성팽녕 · 정유명이 서당 중건을 발의하자 정몽서 · 신복행이 중건에 참여했고, 임훈의 동생 임운이 서당의 규모와 제도를 마련했으며, 당시 수령의 경제적 보조를 받아 갈천의 서쪽 석담(石潭) 아래 회암(回巖)의 위로 이건 · 중수하면서 갈천서당이 되었다.
변천
형태와 특징
갈천서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이며, 홑처마 맞배지붕 형태를 띠고 있다. 대문은 맞배지붕의 솟을 대문이다. 뜰에는 후손들이 세운 두 형제의 신도비가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갈천서당개건상량문(葛川書堂改建上樑文)』
- 『갈천서당명(葛川書堂銘)』
- 『갈천서당중수기(葛川書堂重修記)』
- 『갈천서당중수기후(葛川書堂重修記後)』
단행본
- 『葛川 林薰과 瞻慕堂 林芸 硏究』(동방한문학회, 2002)
- 『거창 갈천서당, 기록화 조사 보고서』(거창군, 1997)
인터넷 자료
- [국가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