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3년 최초의 영건시 이 서당은 마학동(磨學洞)에 자리잡아 갈천(葛川)임훈(林薰)과 도계(道溪)임영(林英), 첨모당(瞻慕堂)임운(林芸)이 학문과 수양에 힘쓰고 제자들을 양성한 곳이다. 임영이 요절하자 폐지되었다.
그 후 갈계동에 갈천서당이 건립되었다. 이 때 옥계(玉溪)노진(盧禛)이 도내 유생과 함께 건립하였으나 임란으로 소실되었다. 다시 석곡(石谷)성팽년(成彭年)과 역양(嶧陽)정유명(鄭惟明)의 주도하에 갈천의 서쪽 석담(石潭)의 아래에 있는 회암(廻岩) 위에 지었는데 화재로 폐지되었다.
임란이 끝나자 고장의 선비들이 의탁하여 강론할 곳이 없음을 개탄하였다. 이에 다시 건립되었는데 화재로 또다시 폐지되었다. 1877년에 개건하고 1882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당의 중수에는 성재(性齋)허전(許傳)이 참여하였다. 199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임훈과 임운의 문집책판인 갈천선생문집책판과 첨모당선생문집책판이 1979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