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훈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장악원정, 광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갈천(葛川), 자이당(自怡堂)
  • 이칭고사옹(枯査翁)
  • 중성(仲成)
  • 시호효간(孝簡)
인물/전통 인물
  • 본관은진(恩津)
  • 사망 연도1584년(선조 1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장악원정|광주목사
  • 출생 연도1500년(연산군 6)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거창 갈천선생문집 중 권3의 권수제 미디어 정보

거창 갈천선생문집 중 권3의 권수제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장악원정, 광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중성(仲成). 호는 자이당(自怡堂), 또는 고사옹(枯査翁)·갈천(葛川). 아버지는 진사 임득번(林得蕃)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晉州姜氏)로 강수경(姜壽卿)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40년(중종 35)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독서(讀書)하였고, 1553년(명종 8) 관천(館薦)에 의하여 사직서참봉이 되었다가 이듬 해에 집경전참봉으로 옮겼다.

그 뒤 제용감참봉으로 옮겼으나 부임하지 않았는데, 1555년 전생서참봉이 되었다가 얼마 후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80세가 넘은 노부를 봉양하여 1566년 관찰사의 추천으로 효행의 정려를 받았다.

1566년 언양현감에 발탁되었고, 1569년(선조 2) 군자감주부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곧 비안현감을 거쳐 1573년 지례현감이 제수되었는데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자, 곧 종묘서영(宗廟署令)에 제수되었지만 역시 부임하지 않았다.

얼마 뒤 장악원정을 거쳐 광주목사(光州牧使)를 지냈고, 1582년 장례원판결사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안의의 용문서원(龍門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갈천집(葛川集)』이 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효간(孝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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