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원팔(元八), 호는 산좌(汕左)·수당(修堂). 충청남도 예산 출신. 이호직(李浩稙)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청송심씨(淸松沈氏)이다.
1861년 허전(許傳)의 문하에 들어가 일찍이 유학으로 이름을 떨쳤다. 1875년(고종 12)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883년 승문원권지부정자(承文院權知副正字)에 올랐다. 1885년 홍문관교리에 임명되고, 그뒤 부수찬·수찬을 역임하였다.
1893년 부호군을 지낸 뒤 1896년 안동부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898년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을 지내고, 1902년 궁내부특진관이 되었다.
한편, 1894년 5월 일본공사 오도리[大鳥圭介]가 군대를 이끌고 서울에 입성하자 상소를 올려 일본의 무도함을 규탄할 것을 요구하였고, 갑오경장의 부당성과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의 통분함을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영흥부사의 직을 사임하고 향리로 돌아갔다.
1906년 병오의병 당시 홍주에서 거의하였던 민종식(閔宗植)이 일본군에 패하여 은신을 요구하자 숨겨 주었으며, 이 일로 인하여 의병과 관련 있다 하여 1907년 공주옥에 투옥되었다가 며칠 뒤 온양 평촌 냇가에서 아들 이충구(李忠求)와 함께 피살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