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암집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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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의병장 노응규의 창의소·지부자현소·의소 등의 상소문을 모아 엮은 의병록. 상소문.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구용 (강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의병장 노응규의 창의소·지부자현소·의소 등의 상소문을 모아 엮은 의병록. 상소문.

내용

필사본. 내용은 창의소(倡義疏) 1편, 지부자현소(持斧自見疏) 1편, 의소(擬疏) 2편이 실려 있다.

<창의소>에는 1895년 8월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와 그해 10월 단발령이 실시되자 다음해 1월 고향 안의(安義 :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동향인 서재기(徐再起)·정도현(鄭道鉉)·박준필(朴準弼) 등과 더불어 기의(起義)하여 진주성에 잠입하고 매국노 관리를 처형하는 등의 의병항쟁을 벌이던 의병장 노응규가 군왕(君王)에게 상소한 글이다.

이 소장(疏狀)에서 그는 창의가 불가피함을 논리적으로 전개하고, 이어 춘추필법(春秋筆法)에 의하여 임금을 위하여 새로운 결의로 난국타개의 소신을 피력하였다.

다음 <지부자현소>는 진주창의(晉州倡義) 이후 상경한 노응규가 1897년 10월 판서 신기선(申箕善)의 주선과 조병식(趙秉式)의 입품(入稟)으로 자신이 직접 도끼를 등에 지고 궐내에 들어가 상소를 한 것이다.

그 내용은 옛날 한나라의 관동(關東)과 당나라의 하북(河北)에서 의사(義士)들이 일어나 동탁(董卓)과 안녹산(安祿山)을 무찌르던 예를 들어 조국의 운명을 개탄하였는데, 위의 <창의소>가 고종에게 상달되지 못한 반면 <지부자현소>는 고종으로부터 비답을 받기에 이른 글이다.

나머지 2편의 의소는 지부소(持斧疏)와 같은 시기에 지은 초고본 의소 1편과 소 1편으로 그 내용은 그가 국모시해사건 이래 분함을 씻을 것을 맹세하고 또 군왕에게 무비증강(武備增强)을 피눈물로 호소한 글들이다. 이 책은 의병장 노응규의 연구자료는 물론 한말의병연구에 있어서도 값진 자료이다. 원본은 노응규의 족손 재일이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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