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암집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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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문헌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황병중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편찬한 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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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황병중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편찬한 문집.
내용

목활자본. 이 책은 시와 산문, 그리고 전우(田愚)에게 보낸 서한문 4편, 최익현(崔益鉉)에게 보낸 서한문 2편, 묘지명 1편, 선고학생부군행장(先考學生府君行狀) 1편, 의사전(義士傳) 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우와 최익현에게 보낸 서신에는 위정척사사상을 논하면서 유학의 차원에서 주기론과 주리론에 대하여 질의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는 전우와 최익현의 영향을 받아 위정척사론의 입장에 선 유학자였다.

「의사전」에는 그의 당숙 순모(珣模)와 아우 병학(炳學)의 의거사실이 적혀 있다.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된 뒤 1908년 황병학이 황순모·한성순(韓性舜) 등과 함께 포수를 모집, 거병하여 광양 망덕만(望德滿) 등지에서 의병투쟁을 하다가 황순모는 일본군에게 피살되었다고 한다.

그뒤 황병학은 만주에 건너가서 영고탑(寧古塔)과 용정촌(龍井村)·흑룡강(黑龍江) 및 흥개빈(興開濱)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하였으며,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밀령을 받고 군자금 모금차 국내로 잠입하던 중 압록강에서 일본경찰에 붙잡혀 광주감옥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고 적고 있다. 이 책은 한말 의병운동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 현재 황병중의 손자 호열이 소장하고 있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자료집』 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집필자
이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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