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유신체제하의 삼일절 57주년 기념일에 명동성당에서 약 700명의 신자들이 기도회를 열고 투옥중의 정치범들을 위한 미사를 진행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요지의 민주구국선언문이 발표되었다.
“이 민족은 또 다시 독재정권의 쇠사슬에 매이게 되었다. 삼권분립은 허울만 남고 말았다. 국가안보라는 구실 아래 신앙과 양심의 자유는 날로 위축되어 가고, 언론의 자유와 학원의 자주성은 압살당하고 말았다.
현 정권은 이 나라를 여기까지 끌고온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비원인 민족통일을 향해서 국내외로 민주세력을 키우고 규합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전진해야 할 이 마당에, 이 나라는 일인독재 아래 인권은 유린되고 자유는 박탈당하고 있다.
이리하여 이 민족은 목적의식과 방향감각,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잃고 총파국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서고 있다. 우리는 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여·야의 정치적인 전략이나 이해를 넘어 이 나라의 먼 앞날을 내다보면서 ‘민주구국선언’을 선포하는 바이다.
이 나라는 민주주의 기반 위에 서야 한다. 우리는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긴급조치를 곧 철폐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다가 투옥된 민주인사들과 학생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한다. 언론·출판·집회 등의 자유를 국민에게 돌리라고 요구한다.
우리는 유신헌법으로 허울만 남은 의회정치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사법권의 독립을 촉구한다. 경제입국의 구상과 자세가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민족통일은 오늘 이 겨레가 짊어진 지상의 과업이다.”
이 선언문에 서명한 사람은 윤보선(尹潽善)·김대중(金大中)·함석헌(咸錫憲)·함세웅(咸世雄)·이우정(李愚貞)·정일형(鄭一亨)·윤반웅(尹攀熊)·김승훈(金勝勳)·장덕필(張德弼)·김택암(金澤巖)·안충석(安忠錫)·문정현(文正鉉)·문동환(文東煥)·안병무(安炳茂)·이문영(李文永)·서남동(徐南同) 등이었다.
정부는 이 선언사건을 중시, 수사에 나서 3월 10일 관련인사 20명의 명단을 발표하고 그 중 김대중 등 11명을 대통령긴급조치9호 위반혐의로 구속하고, 윤보선·함석헌 등 9명을 불구속입건하였다.
검찰당국은 발표를 통하여, “관련자들은 삼일절 기념미사가 거행된 서울 명동 성당에서 민주회복이라는 명목 아래 ‘민주구국선언’을 발표, 청중을 선동하여 시위를 촉발함으로써 민중봉기로 확산시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이를 이용하여 현정부를 전복, 정권을 탈취할 것을 획책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사건 관련자 18명은 재판에 회부되었는데, 1심에서 징역 8년에서 2년까지의 실형선고를 받았다. 윤보선·김대중·문익환(文益煥) 등이 8년형을 언도 받았다.
항소심에서 최고 징역 5년에서 집행유예까지의 선고를 받고 상고했으나, 1977년 3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① 민주구국선언은 사실을 왜곡하고 있고, ② 긴급조치와 헌법을 비방하고 있으며, ③ 원심에 사실오인이 없고 공소사실은 모두 인정된다는 이유를 들어 피고인 전원에 대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