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 출생. 1942년동경공업대학(東京工業大學) 응용화학과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공학박사 정규과정을 밟은 전형적인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 유기화학을 개척하였으며, 과학기술관료로도 명성이 높았다.
1946년 국립공업연구소 연구관을 시작으로 연구기관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1963∼1966년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교수, 1966∼1968년 원자력연구소장, 원자력청장 등을 거쳐 1968년에서 1976년까지 인하대학교 공과대학장과 총장을 지냈다.
1974년 과학기술진흥재단 부이사장, 1976년 화학연구소장, 1977년 고분자학회장(高分子學會長) 등 연구단체에서도 크게 활동하였다. 1979년부터 3년 동안 과학기술처장관의 책임을 맡아 과학기술진흥에 힘썼고 1983년에는 한국과학기술원 이사장으로 일하였다.
그는 “우리나라처럼 부존자원이 빈약하고 또 세계경제가 어려울 때의 타개방법은 과학기술밖에 없다.”는 신조 밑에 일해 온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과학기술원이 과학두뇌양성기능을 최대한으로 높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도 앞장선다는 자부심 밑에 일할 것을 강조해왔으며 실제로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유기화학 고분자화학 등에 관한 저서와 40여 편의 논문이 있다.
1960년 녹조근정훈장, 1970년 국민훈장동백장, 1971년 대만화학회 학술상, 1975년 과학기술상·청조근정훈장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