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421년(세종 3)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440년(세종 22)에 치성재, 동 · 서재, 명륜당, 풍화루를 새로 지으면서 이름을 '수학원학사서재'로 바꿨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64년(현종 5년)에 안혜원이 유교진흥을 위해 성현들을 모시는 대성전을 세우면서 비로소 교육과 제사를 겸했던 향교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1914년 최필민(崔佖敏)이 교궁(校宮)을 중수하고, 여러 차례 보수했으며 현재는 동재를 없애고 풍화루를 폐쇄했으며, 외삼문을 통해 출입하게 하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9칸의 대성전, 6칸의 명륜당, 각 4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7칸의 전사실(典祀室), 5칸의 풍화루(風化樓), 내삼문(內三門) · 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건축형태는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앞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뒤쪽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형식이다. 입구의 홍살문을 지나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솟을삼문인 외삼문(外三門)을 들어서면 왼쪽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팔작지붕을 올린 풍화루(風化樓)가 있다. 풍화루 뒤쪽의 석축을 경계로 왼쪽에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에 맞배지붕을 올린 서재가 있다. 치성재는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에 맞배지붕이고 명륜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겹처마 팔작지붕임.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에 맞배지붕을 올린 평삼문인 내삼문을 지나면 대성전이 나온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에 겹처마 팔작지붕을 올린 익공집이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다.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두어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