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서기사 석조 약사여래 좌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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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양동 서기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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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양동 서기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내용

높이 0.86m. 1993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율양산(栗陽山)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서기사는 해방 직후에 옛 절터 위에 건립된 소규모의 암자이다.

절터는 정확한 창건 연대 및 창건자가 미상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유물을 통하여 볼 때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시대에 폐사되었으리고 추정된다.

불상은 원래 광배(光背 :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와 함께 법당(法堂) 뒤의 바위 밑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비바람 안 드는 곳에 있게 해 달라.”는 부처님의 현몽(顯夢)에 따라 법당을 새로이 지어 모신 것이라고 한다.

불상의 얼굴은 비만한 방형(方形 :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복스럽고 예쁜 상호(相好 : 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가 특징적이다. 나발(螺髮 : 부처의 머리카락.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의 머리에는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뚜렷하다.

그리고 미간에는 백호공(白毫孔 : 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 구멍)이 남아 있다. 양 눈썹은 일직선에 가까운 완만한 호를 그리고 있으며 타원형의 두 눈은 활짝 뜨고 있다.

그려 넣은 눈동자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우뚝한 코에 굳게 다물고 있는 조그만 입술이 앙증스럽다. 귀는 어깨 가까이 늘어져 있으며 밭은 목은 매우 비대하다. 떨어져 나간 목을 시멘트로 보강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목구비의 표현이 정제되어 있으며 근엄하면서도 생기가 감도는 단정한 모습을 보여 준다.

착의 형식은 우견 편단(右肩偏袒 : 오른쪽 어깨가 드러남)으로 양 젖가슴과 살이 오른 비만한 상체를 드러내고 있다. 다소 왼쪽 어깨로 치우친 감을 준다. 굵은 평행 옷주름을 이루며 오른 어깨에서 왼 옆구리로 느슨하게 늘어진 두꺼운 대의(大衣 : 설법을 하거나 걸식을 할 때 입는 중의 옷)의 옷주름은 둔중하다.

그리고 왼 손목을 감아 무릎 위로 흘러내린 끝단 또한 줄의 성근 주름으로 간략하게 마무리되었다. 오른손은 왼 무릎 위에 살짝 걸치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약합(藥盒)을 올려놓고 있다.

현재 법당 뒤에 보호되고 있는 불상의 광배는 화사한 주형 거신광(舟形擧身光)으로 상부가 약간 깨어져 나갔을 뿐 그 밖의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음각한 원형 두광(頭光 :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의 중심부에는 8엽의 연화(蓮花)를 정교하게 새겼다.

신광(身光 : 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발하는 빛)의 외연부(外緣部 : 가장자리 부분)에는 화염문(火焰文 : 불꽃무늬)을, 내부에는 당초문(唐草文 : 덩굴무늬)을 빈틈없이 돌리고 있다.

불상은 단정하면서도 빈틈없이 짜여진 체구, 착의 형태, 광배의 문양과 조각 기법 등에서 통일신라의 불상 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기에서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충청북도지』(충청북도, 1992)
『사지』(충청북도, 1982)
『문화재지』(충청북도 편,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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