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내곡동 신복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개설
내용
부드럽고 복스러운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입을 안으로 꼭 다문 천진한 모습은 예천 청룡사 석조 여래 좌상(보물, 1965년 지정)의 입 모양과 흡사하다. 눈썹은 초승달 같은 곡선을 이루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귀의 양 끝에 구멍이 뚫려 있어 금속제 귀걸이를 끼웠던 것으로 보인다. 편평한 목 위에 선각(線刻)으로 층을 이룬 삼도(三道)를 새겼고 무늬 없는 목걸이와 팔찌를 두르고 있다.
두꺼운 천의를 어깨와 가슴에 둘렀다. 왼팔을 무릎 위에 올리고 모아 쥔 두 손은 가슴에 꼭 붙이고 있으며 손에 뚫린 큰 구멍에는 지물(持物)의 손잡이였던 금속주(金屬柱)가 남아 있다.
이 보살상은 원형의 대좌받침이 있는데, 안이 움푹한 원래의 연화대좌에 이것을 끼워 넣게 되어 있다. 현재 대좌받침의 앞부분이 없어졌다. 대좌 위에는 두 개의 금속주가 있어 원래는 대좌받침 촉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대좌가 정확히 맞추어져 있지 않아서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연화좌 밑에는 폭이 좁은 중대석이 있고 거기에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다. 그 아래 넓은 팔각형의 지대석이 묻혀 있으며 복련(覆蓮: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의 하대가 있었을 것이지만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강릉 한송사지 보살좌상, 평창 오대산 월정사 석조보살과 함께 고려 초기에 강원도 명주 지방에서 유행하던 불상 양식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고려전기 11세기무렵의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 『고려시대 불교조각 연구』(최성은 , 일조각, 2013)
- 『한국예술총람』고려편(예술원, 1964)
- 「고려초기 명주지방의 석조보살상에 대한 연구」(최성은,『불교미술』5, 동국대학교박물관,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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