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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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도지도(호서지도 제3첩)
충청도 도지도(호서지도 제3첩)
인문지리
지명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를 합하여 부르는 이름.
이칭
이칭
홍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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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를 합하여 부르는 이름.
내용

흔히 호서지방(湖西地方)이라고도 한다. ‘충청’은 충주(忠州)와 청주(淸州)의 머리 글자를 합하여 만든 합성 지명이다. 이 지역은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중심 지역이었으며, 백제가 망한 뒤에는 당나라가 5개의 도독부(都督府)를 설치한 지역의 일부이다.

76년간 당의 지배가 끝난 뒤에 714년(성덕왕 13)에 신라의 영토가 되었고 756년(경덕왕 16)에 웅주도독부(熊州都督府)에 예속되었다. 신라 말에는 후백제와 태봉이 이곳을 분할 점령하였다. 995년(성종 14)에 충청북도 지역을 중원도(中原道), 충청남도 지역을 하남도(河南道)로 하였다.

1106년(예종 1)에 관내도(關內道)와 중원도·하남도를 합쳐서 양광충청주도(楊廣忠淸州道)로 하여 이 때 처음으로 충청도라는 명칭이 생겼다. 1172년(명종 2)에 중원·하남을 나누어 충청도가 되었다가 1314년(충숙왕 1)에 다시 합쳐 양광도로 하였으며,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충청도라 하였다. 1395년(태조 4)에 양광주(楊廣州) 예속의 군현을 나누어 경기도와 충청도로 분할시켰고 관찰사영을 충주에 두었다.

1413년(태종 13)에 군현을 대폭 변경하여 여주·안성·음죽·양성·양지 등을 떼어 경기도에 속하게 하고 경상도의 옥천·영동·황간·보은·청산 등을 충청도에 예속시켰다. 1598년(선조 31)에 충청도 감영을 공주로 옮겼다. 1505년(연산군 11)에 충공도(忠公道)로 바꾸면서 진천·직산·평택·아산 등을 경기도에 옮겼다가 중종 때 환원하였다.

1550년(명종 5)에 청공도(淸公道)로 바꾸고, 1613년(광해군 5)에 공청도(公淸道)로, 1628년(인조 6)에 공홍도(公洪道)로, 1646년에 홍충도로, 1656년(효종 7)에 공홍도로, 1670년(현종 11)에 충홍도(忠洪道)로, 1680년(숙종 6)에 공홍도로, 1729년(영조 5)에 공청도로, 1731년에 홍충도(洪忠道)로, 1825년(순조 25)에 공충도(公忠道) 등으로 바뀌었다.

그 사이사이에 충청도로 환원되는 등 명칭의 변경이 잦았는데 이는 지명을 따온 지역에서 강상죄인(綱常罪人)이나 배역자(背逆者)가 생기면 그 때마다 바뀌고는 하였다. 1896년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충청도는 충청남도·충청북도로 나누어졌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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