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산의 지명유래는 ‘종산(宗山)’ 또는 ‘주산(主山)’에서 나왔다. 이는 덕산 서쪽의 가야산(伽倻山)을 뜻하며, 이곳은 백제의 이복(伊復)이 부흥운동을 하기 위하여 성을 쌓고 저항을 하던 곳이다. 마시산은 덕산온천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예산 지역은 차령산맥과 가야산맥 사이의 예당평야의 남부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역의 동부는 산지로 둘러싸이고, 서부는 구릉지대가 분포하며, 그 사이에는 무한천과 삽교천이 북류하여 옥토를 이루고 있다. 기후는 연평균기온이 11.7℃, 강수량 1232.1㎜로 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으나 해양의 영향을 많이 받지는 않았다.
본래 백제의 마시산군(馬尸山郡)이었는데, 신라의 영토가 된 후에 경덕왕이 이산군(伊山郡)으로 고쳐 웅주(熊州: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의 관할에 두었다. 고려 현종 때 홍주(洪州:지금의 충청남도 홍성)에 예속시켰으며, 조선 태종 때 덕풍(德豊)과 합쳐 덕산군(德山郡)으로 고치었다. 이는 이산군의 주민수가 적기 때문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현내면ㆍ나박소면을 덕산면으로 통합하고, 대덕산면ㆍ대조지면ㆍ장촌면은 삽교면으로, 도용면ㆍ고현내면ㆍ거등면ㆍ고산면을 고덕면으로, 내야면ㆍ외야면을 봉산면으로 통합하여 예산군에 병합하고, 덕산군은 폐지했다.
1868년(고종 5) 독일인 오페르트가 구만포로 들어와 가야산에 있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고 민가를 약탈한 사건으로 주목을 받았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