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火山)의 분출로 이루어진 칠보산지괴(七寶山地塊)의 동남단을 차지한다. 무수단의 해안까지 뻗은 산맥은 해안지방의 교통을 차단하여 길주 지방에서 명천으로 가는 교통로는 길주명천지구대(吉州明川地溝帶)가 만드는 좁은 통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무수단의 북쪽으로는 바다절벽이 천길 낭떠러지로 이어져 있다.
이러한 지형상의 특색으로 인하여 무수단은 고려시대 동계(東界)의 최북단 국경지대가 되었다. 명천 지방은 본래 여진(女眞)의 궁한리촌(弓漢里村)이었는데 고려 명종 때 여진족을 몰아내어 영평산(永平山)에 성을 쌓고 여기에 공험진(公嶮鎭)을 설치하였다.
그 뒤 여진에게 빼앗겼다가 고려 말기에 수복하였다. 칠보산의 빼어난 산세는 이 곳 마유산(馬乳山)·상암산(裳巖山)에까지 뻗쳐 예로부터 명승지로 알려졌다. 무수단 부근은 북한해류(北韓海流)가 회유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영흥만에 이르는 해역은 우리 나라 최대의 명태어장이 된다.
겨울은 연안지방에 안개가 자주 끼어 광복 전에 이곳에 무수단 등대를 설치하였다. 무수단의 지명은 육지의 끝이라는 뜻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