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대전서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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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문신·학자 김정국이 『성리대전』에서 중요 부분만을 수록하여 1538년에 간행한 유학서.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정섭 (문화재관리국,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4월 05일
성리대전서절요 미디어 정보

성리대전서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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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전기 문신·학자 김정국이 『성리대전』에서 중요 부분만을 수록하여 1538년에 간행한 유학서.

내용

4권 4책. 금성목활자판(錦城木活字板). 199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앞에 성리대전서서(性理大全書序)를 붙이고, 뒤에 편저자 김정국이 자신의 발문을 붙여 편성 동기와 인출 경위를 적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성리대전』은 명나라의 문신 호광(胡廣) 등 42명이 송나라 때의 성리학설에 원나라 때의 성리학자의 학설까지 보태서 집성한 거질(巨帙)의 전서(全書)이다. 이 책은 세종 초기에 우리나라에 사서오경대전(四書五經大全)과 함께 수입된 이후 학자들의 필독서가 되어 왔으나, 60여 권의 거질이며 내용 또한 너무 산만한 결점이 있었다.

중종 때의 문신이며 학자인 김정국이 아주 필요한 내용들만을 간추려 4권으로 편집하고 ‘성리대전서절요’라 제명하였다. 절요자(節要者) 김정국이 1538년 여름에 호남관찰사로 부임, 도사(都事) 김회백(金晦伯)과 의논해 나주목(羅州牧: 錦城)에 있던 목활자에 부족한 글자와 이지러진 글자를 새겨 갖춘 다음, 그 해 가을에 인출(印出)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유교를 국시로 삼은 조선시대에 학자들의 필독서인 『성리대전』의 번다(繁多)한 거질을 우리에게 알맞도록 중요한 내용만을 뽑아 간추렸다는 점에서 그 실용적 가치가 인정된다. 특히, 임진왜란으로 인해 거의 없어져버린 중중 때의 지방 관서 목활자인본의 전질을 새로 찾아냈다는 점에서 인쇄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다.

16세기 전기의 지방 관서 목활자로서는 비교적 잘 새겨진 해정(楷正)한 필서체이며 인쇄 상태도 정교한 편이다.

참고문헌

  • - 『동산문화재지정보고서(動産文化財指定報告書) -1992∼1993 지정편(指定篇)-』(문화재관리국,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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