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4년(세종 16) 신인손이 원나라 웅충(熊忠)이 편성한 『고금운회거요』를 구하여 경주부와 밀양부에 소속된 관리들의 도움을 받아서 간행한 운서이다.
본서는 원(元)나라 황공소(黃公紹)가 편집한 『고금운회』를 원나라 웅충(熊忠)이 요점을 열거[擧要]하고, 주석을 첨가하여 30권으로 편성한 운서이다. 이 책은 운서의 대전(大全)이며 학자의 지침서였으나, 세종 초기까지 간행되지 못하였다.
1432년 겨울 경상도관찰출척사로 부임한 신인손(辛引孫)이 이 책을 간행하기 위하여 도내에서 구했으나 소장자를 찾지 못하자, 이듬해 왕에게 보고하였더니, 경연(經筵)의 소장본 2부를 내려주었다. 그는 이를 경주부와 밀양부에 나누어 보내어 인출하게 하니, 5개월이 걸려 세종 16년에 완성하였다.
간행에 있어서는 감사 신인손 이외에 도사(都事) 박근(朴根), 경주부윤 김을신(金乙辛), 밀양부사 임종선(任從善) 이하 여러 관리가 관여하였고, 판각에 있어서는 대선사(大禪師) 홍조(洪照) 이하 20명의 승려와 전 서승(署丞) 이종생(李從生) 등 총 109인이 동원되었다.
199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4권(권27∼30) 1책. 목판본. 판각이 비교적 정교하고 인쇄가 매우 깨끗하여 원판본(元板本)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의 번각판((飜刻板)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번각판은 1444년 2월에 반절음(反切音)을 우리나라의 음으로 번역에 착수한 후 그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초성 차례로 자류(字類)를 배열하여 1447년에 완성시킨 『동국정운(東國正韻)』의 바탕이 된 점에서 정운연구에 매우 소중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