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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천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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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도시 · 지정항만 · 비행장 · 국가산업단지 등을 연결하며 국가기간도로망을 형성하는 도로. 일반국도.
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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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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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주요 도시 · 지정항만 · 비행장 · 국가산업단지 등을 연결하며 국가기간도로망을 형성하는 도로. 일반국도.
개설

고속국도와 함께 전국의 간선 도로망을 형성한다. 법령상 명칭은 일반국도인데, 「대통령령」으로 노선을 지정한다. 2009년 일반국도의 길이는 1만 3,820㎞로 우리나라 도로 길이의 13.2%를 차지하는데, 국토해양부와 시가 관리하는 길이가 각각 1만 1,232.1㎞, 2,232.1㎞이다. 이 가운데는 2차로는 6,744.4㎞이고, 4차로 이상은 6,719.8㎞로 97.0%가 포장되어 있다.

연원 및 변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도로는 한성 백제시대(서기전 18∼475년) 풍납토성 내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너비 8m, 길이 41m에 이르는 남북도로로 너비는 5m, 길이는 22m 가량의 동서 방향의 도로 등 두 개로, 이 도로는 신라 왕경이나 백제 사비시기(538∼660년)의 부여, 익산 지역 유적에서 발견된 것보다 조성 연대인 6세기에서 300년 이상이 앞섰다. 그리고 이 도로는 너비 7.5∼8m의 땅을 얇게 판 후 가운데 부분에 폭 5m, 두께 20㎝ 가량의 잔자갈을 볼록하게 깔아 다진 포장방식으로 도로 양쪽으로 빗물이 흘려내려 배수가 가능하게 축조되었다.

우리나라의 도로망 형성은 그 기원을 알 수 없지만 다만 단편적인 역참제에 관한 자료에 의해 파악할 수밖에 없다. 역참제(驛站制)는 전국적인 육운 계통을 형성하는 도로망인데, ‘역(驛)’은 원래 군사 및 교통의 요지에 설치되어 중앙 및 지방의 연락을 원활하게 하는 전달기관이며, 또 군사적 목적과 육운 교통으로서의 기능을 가졌으며, ‘참(站)’은 고려시대부터 역과 같은 뜻으로 쓰이다가 1597년(선조 30) 통신을 위주로 하는 파발을 두어서 급한 전달을 의무로 했다.

조선시대에는 주요 도로에 약 30리(10리는 5.1㎞로 15.3㎞) 간격으로 역이 분포해 있었으나, 간선의 경우 평균거리는 44리, 지선은 58리였다.

우리나라 역참제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소지왕(炤智王) 9년(487) 3월에 “처음으로 사방에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왕은 관사(官司)에 명해 관도(官道)를 수리케 하였다.”라고 기록된 것이 최초이나 이 기록만으로는 당시 도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 수가 없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9주 5소경이 설치되는 등 지방제도가 확립되고 중앙 관리의 지방출장, 상인 및 여행자의 왕래가 많아짐에 따라 그 기능이 활발해졌다. 그리고 교통상의 요지에 역뿐만 아니라 진(津), 도(渡), 관(館), 원(院) 등이 확대되어 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시대에는 중앙집권적 관료제가 정비되고 지방제도의 개편이 이룩되어 역제가 정착되었다. 이때에 역의 간선인 22개 역로에는 525개의 역을 두었다. 역로는 국가의 우편 · 통신 등을 전달하는 정치 · 군사적 기능을 수행한 도로로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역원과 역마를 두었다. 고려시대의 역참은 6등급(1과(科)∼6과)으로 구분했다.

역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하여 8도 노정(路程)은 황조(皇朝) 예에 의하면 주척 6척이 1보(步), 360보가 1리(里), 30리가 1식(息)으로 사용했다. 역간의 거리 표시는 당나라의「30리치일역(三十里置一驛)」을 모방하여 주요 도로에는 대략 30리에 역을 두었다.

조선시대의 도로는 도성 내 가로와 읍성간의 외방도로인 역로로 나누어지는데, 도성 내 가로는 다시 가로의 폭에 따라 대로 56척(17.4944m), 중로 16척(4.9984m), 소로 11척(3.4364m)으로, 양쪽 구광(溝廣)은 2척(62.48㎝)이었으나 외방도로의 폭은 매우 협소했다. 주요 대로로 외방도로인 역로는 9개의 간선도로와 행행(行幸)도로(능원묘(陵園墓), 어로(御路), 온천행궁어로(溫泉行宮御路), 전곶교(箭串橋: 살곳이 다리), 두모포(豆毛浦)와 일본과의 교통로, 동대문에서 홍릉에 이르는 도로 등이 있었다.

다음으로 한일강제병합 후 1911년에는 「도로법」을 제정하여 종래에 사용하였던 도로의 종류를 1등 도로(폭 4간: 7.3m), 2등 도로(3간: 5.5m), 3등 도로(2간: 3.6m), 등외도로로 나누고, 1∼3등 도로의 노선수는 575개, 총 연장은 2만 2,424.6㎞였으며, 그 후 치도사업을 하여 해방 당시 도로의 연장은 2만 4,031㎞였고, 그 가운데 국도의 연장은 5,363㎞였다. 이 당시 1·2등 도로는 국가에서, 3등 도로와 등외 도로는 지방에서 관할했으나 조선총독부의 예산 부족으로 1·2등 도로도 지방에서 관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1등 도로는 서울로부터 도청 소재지 · 사단사령부 소재지 · 여단사령부 소재지 · 중요 항만 · 개항장 또는 철도역에 연결되는 도로 등으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2등 도로는 인근 도청 소재지와 연결되는 도로, 도청 소재지로부터 부(府) · 군(郡)에 연결되는 도로, 도청 소재지로부터 도내 중요 지점 · 항만 · 철도역에 이르는 도로, 도내 중요 지점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 인접한 도의 중요 지점을 연결하는 도로였다.

그 뒤 1911∼1929년에 걸쳐 신작로가 완성되었는데, 일제가 치도사업에 힘쓴 것은 조선의 경제를 효율적으로 수탈하고 대륙 침략의 교두보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도로가 더욱 정비되었는데, 1938년 말 국도인 1·2등 도로의 총 연장은 1만 1,907㎞이었다. 이 해에 「조선도로령」이 제정 · 공포되어 종래에 사용하던 도로의 명칭을 국도 · 지방도 · 부도(府道) · 읍면도(邑面道) 등으로 바꾸었다. 1939년 당시의 국도 총 연장은 1만 1,370㎞이었다.

1945년 해방을 계기로 자동차 교통의 발달에 따라 도로망의 혁신이 요구되자 도로 기준을 바꾸어 서울과 도청 소재지와의 도로, 도청소재지 간의 도로, 기타 약간의 중요한 도로를 국도로 지정하였다. 해방 당시의 남한 국도 총 연장은 5,263㎞에 달하였고 포장률은 14% 정도였다.

그러나 정부 수립 초기의 혼란과 6·25전쟁으로 도로의 정비 · 확장 사업은 매우 미약하였고, 많은 도로와 교량이 파괴되어 1951년 말까지 대부분의 도로 사업투자는 복구 작업이 고작이었다. 군사적 목적으로 도로가 확장되었기 때문에 1953년 당시 도로 총 연장은 5,706㎞이었으나 포장률은 6%에 불과하였다.

1961년에 도로 총 연장이 1953년과 같았고, 포장률도 해방 당시보다 두 배로 증가한 12%에 불과하였다. 1961년 12월에 제정된 「도로법」과 1995년에 제정된 것에는 고속국도 · 일반국도 · 특별시도 · 광역시도 · 지방도 · 시도 · 군도 · 구도 등으로 도로를 구분하였다.

1962년부터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결과, 1966년 당시의 국도는 1급 3,135㎞, 2급 5,051㎞로 합계 8,186㎞로 증가되었으며,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끝난 해인 1971년에는 국도 총 연장이 8,801㎞, 포장률 33.6%,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끝난 1976년에는 국도 총 연장은 9,374㎞, 포장률은 52.1%이었다. 그 후 산업과 자동차 교통의 발달로 1987년에 국도의 연장은 1만 2,253㎞(포장률 79.5%), 2000년에는 1만 2,413㎞(98.2%), 2009년에는 1만 3,820㎞(97.0%)로 증가하였다.

현황

2010년 국토해양부의 『통계연보』를 보면, 일반국도의 수는 모두 51개인데, 이 가운데 남북 노선수가 27개로 8,494.7㎞이고, 동서 노선수는 24개로 5,325㎞이다. 남북노선 중에서 부산∼파주노선(77호)이 693.4㎞로 가장 길고, 이어서 부산∼신고산 노선(31호)이 625.8㎞의 순서로 칠곡∼군위 노선(67호)이 33.6㎞로 가장 짧다.

한편 동서노선의 경우 신안∼부산 노선(2호)이 468.8㎞로 가장 길고, 이어서 신안∼울산 노선(24호)이 370.6㎞의 순서로 평택∼화성 노선(82호)이 13.2㎞로 가장 짧다.

다음으로 2009년 시 · 도별 국도의 분포를 보면 경상북도가 전국 국도 연장의 16.3%를 차지하여 가장 길고, 이어서 전라남도(14.5%), 강원도(14.1), 경기도(11.5%), 경상남도(11.1%),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10.1%)의 순으로 제주도에는 국도가 분포하고 있지 않다.

이를 각 시 · 도 면적에 대한 국도연장으로 국도밀도를 산출해 보면, 서울특별시가 280m/㎢로 가장 길고, 이어서 광주광역시 · 울산광역시와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는 170m/㎢, 대전광역시, 경기도와 전라남도는 160m/㎢, 충청남도과 경상남도는 각각 150m/㎢이다.

2009년 일반국도의 노선별 1일 자동차 운행대수를 보면 노선 당 전국 평균 1만 1,728대가 운행되었으며, 이 가운데 승용차가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여 가장 많았고, 이어서 화물차(27.6%), 버스(2.8%)의 순이었다.

많은 통행량을 나타내는 노선을 보면, 강화∼서울의 48호 노선이 약 5만 6,000대가 통행하여 가장 많았고, 이어서 부여∼의정부(39호)와 안산∼철원 노선(47호)이 각각 약 2만 1,000대, 목포∼파주 노선(1호)이 약 2만 2,000대, 부산∼온성 노선(7호)이 약 2만 1,000대, 거제∼포항 노선(14번)이 약 1만 9,000대, 부산∼파주(77호)와 평택∼화성(82호) 노선이 각각 약 1만 8,000대가 통행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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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에 나타난 역참의 분포와 입지」(홍경희·박태화, 『교육연구지』23,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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