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산성 ()

건축
유적
문화재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위치한 성곽. 조선 후기에 개축된 석축 산성.
유적
건립 시기
조선
둘레
4.2km
면적
936,574㎡
소재지
충북 청주시 상당구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70년 10월 01일 지정)
소재지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내용 요약

상당산성은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일원에 위치한 포곡식 산성이다. 통일신라시대 전후부터 운영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여러 차례 개보수가 이루어졌다. 조선 후기에는 충청 병영의 진수 산성으로 경영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현재 성의 전체 둘레는 약 4.2km이며, 시설물로 동문·서문·남문 3개소 및 문루를 비롯하여 암문 2개소, 치성 3개소 등이 남아 있다.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위치한 성곽. 조선 후기에 개축된 석축 산성.
건립 경위

청주목(淸州牧)이 백제 때 상당현(上黨縣)으로 불렸다는 점과 ‘상당기지 개석축(上黨基址 改石築)’이라는 조선 숙종 대 축성 기록으로 볼 때, 상당산성이 백제와 연관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성 내에서 발견된 ‘사량부속장지일(沙梁部屬長池馹)’ 기와편 및 남문 밖에서 발견된 7세기 후반의 인화문토기편으로 볼 때, 상당산성의 초축 시기는 적어도 통일신라시대 이전으로 볼 수 있다. 조선 영조 20년(1744)에 작성된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 따르면, “궁예가 축성하고, 견훤이 빼앗았다가 왕건이 다시 빼앗았다.”라고 하였는데, 이와 관련하여 성 내에서는 9~10세기경 기와편이 발견되기도 했다.

변천

상당산성(上黨山城)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여러 차례 개축되고 정비되었다. 『선조실록』에는 선조 29년(1596)에 원균(元均)이 상당산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는 이시발(李時發)최립(崔笠)을 시켜 성을 쌓았으나 도중에 무너져 그만두었다는 내용도 전해진다. 그 후 효종 2년(1651)에 충청도 54개 고을의 육군을 총괄하는 충청도병마절도사(忠淸道兵馬節度使)의 병영이 해미에서 청주로 옮겨짐에 따라, 상당산성은 충청 병영의 진수(鎭守) 산성으로 경영되는 한편 청주 읍성의 보조적인 역할도 수행하게 되었다. 숙종 대에는 상당산성에 대한 개축 공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는데, 숙종 46년(1720)까지 동문부터 서문에 이르는 남쪽 구역이 개수되었다. 『비변사등록』에 따르면 영조 대에는 상당산성의 체성, 수문, 동문, 남문, 서문 등이 보수되었다고 하며, 상당산성 남문 앞 각자(刻字) 등을 통해서는 순조 대 체성, 여장, 병영 등에 대한 개축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산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1895년 이후 체성 및 문루 등이 무너져 내리거나 없어졌는데, 1957년 6월 남문 등 체성 일부를 개축한 이래 1971년에 홍예문과 체성 등 석축 구간을 개축 · 보수하였으며, 1977년부터 1980년까지 남문 · 서문 · 동문의 문루 등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와 특징

상당산성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용담동, 명암동 일원에 위치한 성곽으로, 청주시 동쪽의 해발 491.2m 고지와 계곡부를 따라 축조된 포곡식 산성이다. 남쪽 구간을 제외하면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성의 서쪽으로는 청주 시내가 잘 보인다. 성의 전체 둘레는 약 4.2km로, 성벽은 산의 능선으로부터 약간 밖으로 벗어나 축조되었으며, 서쪽과 북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성벽의 높이는 지형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북벽의 낮은 곳은 90cm 정도이며, 나머지 구간은 240~470cm 정도의 규모를 보인다. 고상당성은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석재로 수직에 가까운 성벽을 조성하고, 그 안쪽은 흙으로 쌓아 올리는 내탁 공법으로 축조되었다. 조선시대 상당산성 역시 고상당성의 석축과 유사한 방식으로 축조되었으나, 기저부에서 기단석의 크기가 훨씬 작고 성벽 입면에서 그랭이 기법도 많이 확인된다.

『여지도서』의 충청 병영에 대한 기록을 통해 조선 후기 상당산성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데, 그에 따르면 총 둘레 7,275척 · 높이 9척의 규모였고, 성문은 동문 · 서문 · 남문과 동북암문 · 서남암문이 있었으며, 수문과 수구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포루는 총 15개소가 있었고, 여장(女牆)은 1,176첩(堞), 성내 연못은 모두 4개소, 우물이 15개소였다고 한다. 현재 상당산성에는 동문 · 서문 · 남문 3개소의 성문이 남아 있다. 남문은 무사석으로 조영된 내외홍예문으로, 너비는 420cm, 높이 350cm의 규모이다. 동문과 서문은 무사석으로 조영된 평문 구조로, 너비는 280cm, 높이는 270cm의 규모이다. 동문과 남문 부근에는 각각 암문 1개소씩 남아 있으며, 서문 밖에서는 옛 서문지도 확인되었다. 그리고 3개소의 치성이 있고, 1개소의 수문지를 비롯하여 북벽 1개소 · 서벽 2개소 등 총 3개소의 개구식 수구가 남아 있다. 다만 포루 및 여장 등의 시설은 대부분 유실되어 그 원형을 자세히 살피기 어려운 실정이다.

의의 및 평가

상당산성은 통일신라시대 이전부터 운영된 산성으로, 통일 이후 서원경(西原京) 설치 및 운영과 관련하여 중요한 유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성곽의 개축 및 보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특히 조선 후기에 충청 병영의 진수 산성으로 운영되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 군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

참고문헌

원전

『선조실록』
『비변사등록』
『여지도서』
『상당산성고금사적기』

단행본

『상당산성-서장대 및 남문 외 유적지 조사보고-』(충북대학교 호서문화연구소, 1997)
『상당산성-종합지표조사 및 문헌자료집-』(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1999)
『상당산성 성벽 보수구간내 시·발굴조사보고서』(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04)
『상당산성』(충청북도, 2008)
『한국고고학 전문사전 성곽봉수편』(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淸州 上黨山城 – 運籌軒址 發掘調査 報告書』((재)중원문화재연구원, 2013)
『淸州 上黨山城 -北鋪樓址 및 西壁 水口址 發掘調査-』((재)중원문화재연구원, 2016)
『상당산성-수문터·여장 구간 발굴조사-』(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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