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대림산성 ( )

건축
유적
국가유산
고려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충청북도 충주시에 위치한 포곡식 산성. 충청북도 기념물.
유적
건립 시기
고려시대
둘레
4,906m
면적
78,257.2㎡
소재지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 산45번지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지정기관
충청북도
종목
충청북도 시도기념물(1999년 12월 31일 지정)
소재지
충북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 산45번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충주 대림산성(忠州 大林山城)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포곡식 산성이다. 영남 지방과 충주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로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충주 일원의 산성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성의 전체 둘레는 4,906m이며, 동서남북 4개의 문지 이외에 여러 개의 암문지와 치성, 장대지와 각루지, 창고지 등 많은 건물지와 우물지 등이 남아 있다.

정의
고려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충청북도 충주시에 위치한 포곡식 산성. 충청북도 기념물.
건립경위

충주 대림산성(忠州 大林山城) 내에는 많은 양이 유물이 흩어져 있으나, 삼국시대의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대체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기와류는 당초문 암막새를 비롯하여 선조문, 무문(無文), 어골문 등의 문양이 새겨진 고려시대 기와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토기류 역시 고려시대 호형 토기편(壺形土器片)이 주류를 이루며, 통일신라시대의 인화문 토기편(印花紋土器片)도 확인된 바 있다. 성내 건물지에서 병과 접시 등 다양한 종류의 고려청자 조각이 채집되었으며, 정상부 봉수터에서는 조선시대 분청사기청화백자 조각이 수습되었다. 충주 대림산성이 초축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출토된 유물로 볼 때 대체로 고려시대에 축조 · 운영된 것으로 추정한다.

변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충주 대림산성과 관련하여 “주위가 9천 6백 38척이고, 안에 우물 하나가 있었는데 지금은 폐하였다”라는 기록이 전해진다. 한편 대림산 정상부에는 봉수가 남아 있는데, 이는 계립령을 넘어오는 마골점 봉수와 연풍 주정산 봉수 · 마산 봉수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발굴 조사(發掘調査) 결과, 봉수는 흙을 깍아낸 후 둘레를 보축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봉수의 형태는 길쭉한 타원형으로 장축(長軸)은 20m 정도의 규모이다.

형태와 특징

충주 대림산성은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 산35번지의 대림산에 자리한 산성이다. 이곳은 문경에서 이화령이나 조령을 넘어 충주로 이어지는 남북 방향의 교통로를 차단하거나 방어하기에 매우 유리한 여건을 갖춘 천연의 험지이다.

산성은 봉수가 있는 해발 487.5m의 봉우리를 중심으로 동서 방향으로는 길고 서쪽은 좁은 삼태기 모양의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평면은 부정형(不定形)의 장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산성의 전체 둘레는 4,906m에 달하는데, 동벽 585m, 서벽 538m, 남벽 1,555m, 북벽 2,228m로 되어 있다.

성벽은 대부분 내탁의 형태로 축성하였다. 능선으로 올라가는 지점인 남벽과 서벽의 일부를 제외하면, 성의 기단부만 석축하고 나머지 부분은 토축한 토석 혼축(土石混築)의 방식으로 성벽을 조성했다. 석축을 한 부분은 네모난 막돌로 바른층쌓기를 하였으며, 표면을 다듬은 30∼40㎝ 크기의 장방형(長方形) 성돌을 암반 위에 올리고 뒤채움 돌을 다져 넣어 가로줄눈이 거의 수평을 이루게 만들었다. 서문을 중심으로 한 서벽 구간은 지형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높이 4m, 폭 4m로 석축을 하고 그 안쪽에 흙과 잡석을 채워 성벽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산성 내의 시설물로는 동서남북 4개의 문지가 있으며, 이외에 여러 개의 암문지와 치성(雉城), 장대지와 각루지, 창고지 등 많은 건물지(建物址)와 우물지가 확인된다.

의의 및 평가

충주 대림산성은 영남 지역에서 이화령이나 조령을 넘어 충주로 이어지는 교통로 위에 위치한다. 이 산성은 충주 일원에 있는 산성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성이다. 산성의 규모와 축성 방법 등을 고려해 볼 때, 평상시에는 성내 창고 등에 군량미나 병장기 등을 보관하였다가 유사시에 군 · 관민이 함께 성으로 들어가 농성을 하였던 곳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원전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단행본

『충주 대림산 봉수대 발굴조사 보고서』(충북문화재연구원, 2019)
『한국고고학 전문사전 성곽봉수편』(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충주 대림산성 정밀지표조사 보고서』(상명대학교박물관,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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